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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08. 2024

4년 만에 처음

https://groro.co.kr/story/8733



 처음 해 보는 건 아닌데 처음인 일이 있다. 보다 정확히는 4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4년 만에 했다. 4년 동안 하지 못한 이 일은 내 인생에 있어 정말 처음 있는 일로 인해 하게 됐다. 4년 만에 다시 하게 된 일은 아내와 함께 극장에 간 거였다. 기억에 의하면 2020년 1월에 같이 극장에 간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거짓말 같이 4년 만에 아내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그렇다면 4년 간 무슨 엄청난 일이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극장에도 같이 못 갔나 하면 크게 세 가지 일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아내의 임신이었다. 임신을 했다고 극장에 같이 못 갔다는 건 내심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한 해는 공교롭게도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코로나가 터진 2020년이었다. 극장에 갈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임신과 동시에 코로나를 맞아 극장에 갈 수 없었다. 그 해 12월에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곤 육아에 의해 2021년, 2022년, 2023년 이렇게 극장에 가질 못했다. 물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 아내는 두 번 그리고 나는 한 번 정도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둘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진 않았다. 그래도 됐는데 뭐랄까 못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러질 못 했다.



 또 하나 그 와중에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술을 잠시 끊은 적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간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술을 마시지 않았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술을 혹여 마셨다 하더라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내가 운전을 한다든지 구급차를 부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가 챙기는 부분에 비해 한참 부족한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 힘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술을 잘 마시고 즐기는 편이지만 술이 없으면 못 살 정도로 빠져 있는 건 아니어서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견딜 만했다.



 그 아이가 2024년 올해, 만으로 세 살을 넘기고 드디어 처음으로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나 유치원에 가게 됐다. 3년 간 아내와 함께 가정보육을 했다. 조금 더 일찍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있었으나 아내와 합의에 의해 가정보육을 했다. 처음부터 36개월을 꽉 채워 가정보육을 하려 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딸아이의 존재 자체가 아직 신기한데 2024년 3월 4일 유치원에 첫 등원을 했다. 집에서 엄마, 아빠 앞에서는 조잘조잘 잘도 떠들고 세상 똥꼬 발랄하게 뛰어놀지만 밖에만 나가면 조심스럽게 낯을 가리는 아이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도 하지 않는 아이여서 다소 걱정을 했다. 더욱이 엄마는 일을 잠시 접고 출산과 육아에 전념했고 아빠인 나는 직업 특성상 오전에 시간이 있어 정말 웬만하면 모든 일정을 세 가족이 함께 했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 품을 떠나 유치원에서 잘할 수 있을지 첫 등원 날에 버스를 타는 순간 바로 우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버스가 도착하고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고 선생님의 손길에 이끌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버스에 올라탔다. 밖에서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는데 특유의 뚱한 듯 다소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엄마, 아빠에게 손을 흔들어 줬다. 버스가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잘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잠시 정리 좀 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이 멀지 않아 아이가 병원을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거나 혹은 일을 보러 다니면서 늘 지나쳤다. 그렇게 지나치던 극장에 들어 가 티켓을 예매하는 게 왜 그리 생경스러운지... 4년 만에 그것도 아내와 함께 처음이니 그럴 만도 했다.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을 해서 재미있게 봤다. 시간이 맞으면 카페까지 가려했는데 다음 날로 미루고 첫 등원에 이어 첫 하원을 맞으러 갔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딸아이의 존재가 아직도 신기한데 유치원을 보내는 아빠라니... 영 현실감이 떨어졌다. 유난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유난스러운 거 아는데 마음이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 더해서 늘 아이와 함께 하던 시간이 비어 버리니 당장 뭘 해야 할지 마음이 붕 뜬 것도 한몫했다. 꿈만 같은 정도는 아니었는데 뭔가 정돈이 되지 않고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종잡을 수 없는 하지만 기분은 좋은 동시에 걱정도 되는 아주 묘한 그야말로 처음 겪어 보는 마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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