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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 태어난다는 표현을 쓰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뭐 여하튼 태어났다. 싹이. 어떤 싹이? 수박 싹이! 혹시나 하고 뽑았다가 역시나 개 망한 걸 확인하고 적환무를 다시 심을 때 혹시나 하고 심은 수박씨가 있었다. 한 2주 정도 전인가 싶은데 그때 수박씨를 심는 마음은 싹이 나오려면 나오고 아니면 말고 딱 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하고 있는 그로로팟 4기의 작물인 적환무가 망했기 때문에 수박에 딱히 관심과 열정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저 나름 식집사라고 과일을 먹었는데 씨가 나왔으니 한 번 심어 보자 정도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심은 적환무와 수박씨를 화단을 지나치면서 늘 확인했다. 수박씨는 씨를 심은 거기 때문에 당장은 딱히 확인할 게 없었고 적환무가 어떻게 자리를 잡으려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다시 심은 바로 다음 날 보니 적환무의 잎들이 축 처져 흙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걸 보고 텄다 싶었다. 수박씨는 혹여 싹이 나온다면 다른 잡초들과 구분하지 못하고 뽑아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정도의 걱정만 했다.
정말 다행히도 흙 속의 뿌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음 날부터 적환무 잎은 다시 살아올라 하늘을 향해 뻗었다. 뿌리가 제대로 영글지 못해 못 먹는 건 이제 됐고 여하튼 식물로서 적환무가 다시 잎을 하늘로 뻗고 있는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박씨는 당연히 아직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뿌리가 혹시라도 영글까 싶은 마음과 싹이 나오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화단에 물을 매일 줬다. 오늘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확인을 하는데 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이전에 봐 왔던 잡초들과는 조금 다른 잎이 쌍으로 빼꼼하고 나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만 보니 그중에 수박씨 껍데기를 아직 제대로 벗지 못한 녀석이 있었다. 아하! 이거 수박 싹 맞구나 했다. 그리고 잘 둘러보니 여기저기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 싹이 꽤 있었다.
아 하하하하하하하, 싹이 나오긴 나오는구나! 씨를 심으면 싹이 나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신기한 것 또한 사실이다. 세어 보니 총 10개 정도의 싹이 나왔다. 씨를 심을 때 대충 20여 립 정도를 뿌리다시피 했는데 반 정도 혹은 3분의 1 정도가 나온 거 같다. 아직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볕은 좋은 자리니 물만 잘 주면 일단 자라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저번에 올린 글을 본 다른 식집사 분께서 사진을 통해 흙을 보니 영양이 부족한 거 같다고 해서 그 부분을 조금 보완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런데! 여름에 나는 수박을 여름에 심어도 되는 건가? 그럼 가을에 혹시 수박이 열리나 아니면 겨울에 얼어 죽는 건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 집어치우고 일단 올라온 싹 귀하게 보고 잘 키워야겠다. 적환무는 봐서 다시 한번 뽑아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