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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추파!’
나는 후추 파다. 후추를 넣어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엔 다 넣어 먹는다. 그냥 넣어 먹지 않고 많이 넣어 먹는다. 후추를 솔솔 뿌리는 게 아니라 퍽퍽 쏟아붓는 수준이다. 국이나 찌개 표면이 후추로 까맣게 뒤덮여야 아~ 후추 좀 뿌렸구나 싶다. 돈가스를 먹을 때 나오곤 하는 크림수프에도 후추를 팍팍 넣어 먹는데 가끔 이게 크림수프인지 후추 수프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만큼 후추를 좋아한다. 후추의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그리고 약간은 짭쪼름한 느낌이 너무 좋다.
네네, 다시 묻겠습니다. 그래서 설탕 파에요? 소금 파에요?
아니 썅, 나 후추 파라고!!!
밑도 끝도 없이 이런 개떡 같은 전개로 글을 시작하나 싶을 거다. 제목에 있는 질문이 개떡 같아서 개떡 같이 시작해 봤다. 얼마 전 이동하면서 간간히 듣는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사연을 읽었다. 내용은 이랬다. 누구누구 DJ님,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콩국수가 생각납니다. DJ님은 설탕 파세요? 소금 파세요? 아... 저 그게 저는 콩국수를 먹지 않습니다 하면서 진행자가 멋쩍게 대답을 했다. 그리곤 사연을 보낸 청취자에게 약간은 미안했는지 만약에 콩국수를 먹는다면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이걸(설탕이라고 대답했는지 소금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넣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질문이고 아무것도 아닌 대답을 했다. 흔한 질문이고 본인의 기호와 관계없이 청취자에게 최선을 다해 답을 해 줬다. 그냥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문제고 나발이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순간 조금 짜증이 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인 기호를 상대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할 건가 싶었다.
상대방이 콩국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예전에 잘못 먹은 기억이 있어 발작을 일으키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관심이나 있나 모르겠다.) 그저 일반적인(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일반적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없는 불특정 한 일부의 기호일 뿐이다.) 질문을 했을 뿐이다. 해서 그 청취자가 엄청나게 뭘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여름이면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질문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문제다. 아무런 문제인식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상대의 기호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거나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 결국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민감한 거 맞다. 콩국수이기 때문에 아마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왜? 내가 콩국수를 먹지 않기 때문에! 야, 그럼 그건 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결국 발끈한 거밖에 안 되잖아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사람들 수만큼 또 많은 기호와 취향이 있다. 그런 모든 기호와 취향이 확인할 길 없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무시된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콩물은 조금 먹는 편이다. 콩물도 엄마 때문에 먹게 된 건데 혼자 살 때 여름이면 몸에 좋다고 시장 통에서 직접 갈아 주는 콩물을 받아 가져다주곤 했다. 처음엔 너무 싫었다. 아니 나 콩물 싫은데 그 왜 자꾸 싫다는데 가져오는 거야, 날도 더운데 시장에서 그거 가는 거 기다리려면 얼마나 힘들어, 아 됐으니까 안 먹어도 되니까 괜찮아 가져오지 마 해도 엄마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저 아들을 위해서... 결국 포기하고 미안하고 아까워서 몇 번 억지로 먹다 보니 적응이 돼서 요즘은 가끔 찾아 먹는 편이다. 그런데 콩국수는 영 별로다. 싫은 것보다는 굳이? 딱히! 맛있는 국수가 많은데 굳이 콩국수까지 먹을 필요 있나 이 정도 생각이다. 몇 번을 먹어 봤지만 콩국수는 적응이 안 돼서 안 먹는다.
이렇게 나만의 기호라는 게 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선택,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기호를 선택이 아닌 당위 혹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몰아가는 인간들이 은근히 아니 상당히 많다. 앞에 예를 든 콩국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후에 음악이 하나 나오고 콩국수와 관련한 사연들이 더 들어와 진행자가 소개해 줬는데 이런 것들이다. 아니, DJ님. 여름인데 콩국수를 안 드신다고요? 어떤 인간은 DJ님, 당신 고향이 콩으로 유명한데 콩국수를 안 먹는다고? 이런 내용의 문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진행자는 문자를 읽으면서 계속 멋쩍게 답을 했다.
여름인데 콩국수를 안 먹는 게 무슨 죄며 콩으로 유명한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콩을 안 먹는 건 또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럼 고추로 유명한 청양출신 사람들은 고추만 먹고살아야 되나? 아니 매운 거 못 먹으면 뭐 청양출신이라는 본적을 파야 되나? 여름이건 어디 출신이건 그 사람이 먹고 싶은 걸 먹는 거지 왜 그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인간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더 문제인 인간들은 이런 인간들이다. 설탕 파냐, 소금 파냐 물어봐서 어, 난 고소한 콩물에 달달한 맛이 좋아서 설탕을 넣어 먹어 이러는 순간, 에이~ 콩국수엔 고소한 콩물엔 짭쪼름한 소금이 맞는 거지 그래 거기다 설탕을 넣어? 느끼하게! 아니 ㅆ...(욕이 나올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물어본 거야? 차라리 취향이 어떻든 여름엔 무조건 콩국수를 먹는 거고 콩국수엔 반드시 소금을 넣어 먹는 거야, 알았지! 이렇게 명령을 하던 가, 도대체 왜 물어보냔 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요리법이 자신이 음식을 먹는 방법이 최고고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먹으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인간들을 난 혐오 한다. 아니 그러면 고기는 그냥 구워 먹기만 하면 되지, 왜 삶아도 먹고 볶아도 먹고 끓여도 먹는지 되묻고 싶다. 수육이나 보쌈이나 구워 먹는 삼겹살이나 다 비슷비슷한 부위를 사용하는데 이런 인간들만 있었으면 우린 아마 고기를 딱 한 가지 방법으로만 먹었을 것이다.
내 취향과 아무 상관없는 개떡 같은 질문을 했으니 나 역시 상대가 원하는 답과 아무 관계없는 답을 하면서 더운 여름에 엿이나 한 번 맥여 본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은 이러시면 안 돼요. 전 싸가지가 없으니 이런다지만 여러분은 서로서로 사랑하세요. 콩국수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드시고 싫어하시는 분들은 다른 시원한 거 많이 드시는 건강한 여름 되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