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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정도 전인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는데 온몸이 부서지는 거 같았다. 일단 등이 너무 아팠다. 등 전체가 물이 마른 논밭이 쩍쩍 갈라지듯이 가로 세로로 통증이 왔다. 으어어어... 나도 모르게 그냥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코와 입이 만나는 지점은 꽉 막혀 매캐한 느낌을 줬다. 아직 끝이 아니다. 목은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한 거 같았고 플러스알파 목감기까지 와서 가래가 들끓었다.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었다. 코, 목 그리고 등. 평소에 잊을 만하면 질환이 생기고 아픈 부위들이라 끄응 신음을 입에 물면서 일어났다. 일단 버텨 보자. 약 먹는 걸, 병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0대 초중반 까지는 해열제, 두통약, 소화제 등은 일절 먹지 않았다. 열이 나는 거야 하루 잘 씻고 땀 좀 빼면서 자면 되고 머리 아픈 건 평소보다 일찍 자면 되고 소화가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만약에 안 된다면 그게 무어든 들고일어나 뛰는 신체 활동을 하면 속이 내려갔다.
그런데 들어가는 나이엔 장사 없다고 점점 버티기 힘들어졌다. 웬만한 통증이나 가벼운 질환은 하루 이틀 버티면 수습이 됐는데 30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없던 비염까지 생기면서 더 이상 그냥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로 열이 나면 해열제는 잘 먹었다. 두통은 아직도 가끔 생기면 그냥저냥 일찍 자면서 보냈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는 지금 역시도 별로 없어 특별히 신경은 쓰지 않았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거의 바로 먹는 정도도 나에겐 장족의 발전(?)이다.
그에 반해 병원에 가는 건 아직 조금 별로다. 별로라기보다는 병원에 가야겠다는 실행력이 굼뜨다고 해야 되나? 하루 더 있어 보자, 하루 더... 이렇게 그냥저냥 나아지는 경우도 많고 아내한테 잔소리 듣고 가는 경우도 있고 결국 힘들어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3주 전 트리플 크라운은 고통스럽고 불편했지만 너무 익숙한 질환들이라 일주일을 버텼다. 그랬더니 코와 등은 많이 나아졌고 목도 괜찮아졌지만 마른기침은 쉬지 않고 나왔다. 본업이 떠드는 일인데 마른기침은 치명타였다. 다른 건 다 참아도 호흡을 하는 순간순간 올라오는 마른기침은 어찌할 수가 없어 병원엘 가야겠다 하고 역시 하루 이틀 미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처음으로 물총놀이를 하고 왔다. 놀이 시간에 물총놀이를 한다고 해서 아내가 작은 물총을 준비해 줬다. 물총놀이 당일에 상황이 돼 아내와 함께 아이를 직접 받으러 유치원에 갔다. 선생님이 재미있게 잘 놀았다고, 다만 옷 젖는 걸 조금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벼운 간식을 사 먹고 집에 들어왔다.
다음 날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는 평소와 다르게 공부를 많이 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5세 반이지만 만 3세인 아이의 오늘 공부를 많이 해서 힘들다는 말이 귀여우면서 걱정이 됐다.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니 아이가 열이 난다고 아내가 말을 했다. 오늘 힘들다고 한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면서 영유아기에 열이 나는 건 일상다반사기에 일단 밤새 지켜보며 해열제를 먹였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바로 갔다.
미안하게도 아빠의 안 좋은 기관지를 닮은 건지 아이도 코와 목이 자주 붓고 아픈 편이다. 진단내용은 익숙했다. 코와 목이 조금 부어서 열이 나는 거 같고 그래서 콧물도 나고 기침도 하는 거 같다고. 이전에 처방받은 약과 비슷한 약을 받아 주말 내내 먹였다. 더불어 집에 있던 해열제도 계속 같이 먹였다. 하지만 증상은 특별히 나아지지 않았고 열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다행인 건 아이가 그나마 깔아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잘 때는 열도 나고 기침도 있어서 힘들어했지만 깨 있을 때는 평소 모습 그대로 깨발랄하게 잘 놀았다.
일단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병원에 다시 갔다. 다른 증상이 의미 있게 나아진 건 아니지만 신경이 쓰였던 건 이전과 다르게 잘 때 기침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해서 처음으로 기침을 줄여주는 붙이는 패치도 처방을 받았다. 당일에 잘 때 패치를 붙이고 잤는데 다음 날부터 이상하게 기침이 더 심해졌다. 패치를 붙이기 전엔 잘 때만 기침을 했는데 이젠 깨어있는 상태에서 노는데도 시종일관 기침을 했다. 저러다 목 상하겠다 싶었다.
유치원은 갈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있었고 딱히 보낼 수도 없었다. 콧물이 나면서 계속 기침을 하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아무리 선생님으로서 보살펴 준다고 해도 부모만큼은 아닐 거 같고 선생님에게도 부담일 거 같았다. 다시 병원에 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폐렴이란 진단을 받았다. 아이 호흡소리가 작아 잘 못 잡아냈다고 하시면서 엑스레이를 찍고 확인해 보니 폐렴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수액을 맞을 필요가 있다고 해서 수액을 맞으러 갔다. 수액을 맞으려면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주삿바늘로 피부를 따서 확인하는 데 이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바늘로 피부를 따는 순간의 그 공포에 잠식된 듯 한 딸아이의 눈빛이 기억나서 그 순간이 너무 싫었다.
특별한 준비 없이 다른 약 처방받아 가면 되겠다 하고 왔는데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수액을 맞아야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점심도 시키고 수액을 맞았다. 이럴 땐 뽀로로가 최고다. 부모고 나발이고 뽀로로를 보여 주면 거의 모든 상황을 수습할 수가 있다. 뽀로로를 보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뽀로로를 보다가 책을 조금 보고 있으니 수액을 다 맞아서 집으로 왔다.
다음 날 수액을 더 맞아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다시 갔다. 이번엔 조금 준비를 해 갔다. 간식과 점심거리를 소소하게 챙기고 아이 장난감도 가져갔다. 수액을 다 맞고 약과 함께 호흡기 치료를 위해 호흡기를 병원에서 대여를 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 깜빡하고 그냥 왔다. 호흡기 치료에 쓰이는 약만 덩그러니 받아 온 격이 됐다. 이미 진료 시간이 지나 병원에 갈 수 없었고 다음 날은 쉬는 날이라 별수 없이 먹는 약만 먹으면서 보냈다.
호흡기 치료는 일단 못했지만 여하튼 폐렴으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 먹이니 증상이 슬슬 나아지는 게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잘 때 기침이 확실히 줄어 갔다. 그렇게 두 번인가 병원에 더 가서 호흡기도 빌려 와 호흡기 치료도 마저 하고 약도 열심히 먹고 해서 2주가 조금 넘어 완치가 됐다.
2주 동안 유치원에 가질 못 했다. 갈 수가 없었다. 처음 해 본 물총놀이가 문제였던 건지 많은 아이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엄마아빠가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은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확실히 다 완치가 되면 보낼 생각이었다.
그 기간이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보통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아내는 오전에 일을 하고 나는 집안일을 조금 하거나 건물 청소 등을 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책을 조금 읽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아이 하원을 받은 뒤에 일을 하러 갔다. 하지만 아이가 내내 옆에 있으니 앞에 이야기한 모든 걸 하면서 아이도 봐야 했다. 육아는 힘든 일이다. 오전 오후는 집안일과 건물청소 그리고 육아로 꽉 채우고 저녁엔 일을 하려니 참 죽을 맛이었다.
그 와중에 아내가 아이와 비슷하게 슬슬 기침을 시작했다. 어! 폐렴도 옮는 건가? 우리 집에서 잔병치례가 제일 없는 사람이 아내인데 아내가 아이와 비슷하게 기침을 하니 뭔가 싶었다. 아내도 하루 이틀 보더니 안 되겠는지 병원에 갔다. 진단내용은 놀랍게도 어쩌면 코로나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라니... 이제 독감처럼 걸리는 사람은 걸리고 아닌 사람은 아닌 그런 질병이 되긴 했지만 지난 3년 간 우릴 고통스럽게 했던 코로나라니...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해 봤더니 일단 음성이 나왔다. 병원에 다시 가보니 아마 걸렸던 거 같긴 한데 조금 나아졌는지 음성으로 나온 거 같다고 했다. 다만 기침 등의 증상은 있어 일주일 정도의 약을 처방받아 왔다. 나 역시 아이를 보면서 마른기침을 버티다 가던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 왔다. 병원에선 왜 아프기 시작할 때 오지 않았냐 하기에 버티다가 이제 왔습니다 했더니 이왕 버틴 거 더 버티지 왜 왔냐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에 더 안 될 거 같아 그냥 왔습니다 했지만 사실은 다음 주에 휴가를 가기 위해서 휴가가 휴가다워야 하기 때문에 마른기침을 없애기 위해 왔습니다 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내가 먼저 아프기 시작했고 아이가 폐렴으로 뒤를 이었으며 아내가 아마도 코로나로 마무리를 했다. 코로나가 예전만 못 한 건지 다행히 아이와 나는 걸리지 않았다. 해서 아이는 2주간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아 완치가 됐고 아내와 나는 적당히 버티다 일주일 정도의 약을 처방받아 나는 다 먹었고 아내는 이틀 정도 더 먹어야 하는 거 같다. 아내도 거의 다 나은 거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휴가 가기 전에 아팠고 휴가를 가기 위해 열심히 약을 먹었다. 더불어 아이는 한 달 정도 유치원에 안 가게 생겼다. 아파서 지난 2주간 가지 못 했고 이번 주는 돌봄 기간이지만 우리 가족 휴가라 안 가고 다음 주는 유치원 휴가라 가질 않는다. 유치원에 육아수당을 받아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