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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이었다. 결혼을 한 해다. 아내와 같이 맞이하는 첫여름이었다. 한참 신혼생활로 알콩달콩할 시기였는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정말 헉헉거리는 그런 더위였다. 5월에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여름휴가 계획을 특별히 세우지 않았다. 그저 처음 사귀던 때를 생각하며 소위 당일치기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해가 쨍하고 내리쬐는 날, 서대문 형무소를 보러 갔는데 정말 뜨거웠던 열기가 아직 기억에 남는다. 강원도에 가서 물 회도 먹고 닭 강정도 사 먹은 기억도 난다.
여하튼 정말 무진장 더웠다. 살아온 여름 중에 제일 더웠던 거 같다. 그런데 문제는 에어컨이 없었다. 5월에 결혼을 하면서 가장 급한 집 먼저 해결하고 살림은 중요한 거부터 차근차근 채워 가기로 했다. TV는 안 보기로 했으니 제외하고 잠은 자야 되니 침대부터 준비했다. 앉아서 공부도 조금 하고 인터넷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해서 책상도 준비했다. 아내가 화장을 하기 위해 작은 화장대 하나와 책을 꽂아 넣기 위한 책꽂이 정도만 우선 준비했던 거 같다.
우선이 아니라 일단 그게 끝이었다. 그리곤 여름을 맞았는데 그때까지 에어컨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아내는 본집의 자기 방에 작은 에어컨이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사용한 거 같지는 않았고 난 에어컨을 쓴 적이 없었다. 에어컨을 쓰고 말고를 떠나 내가 살던 본집엔 아예 에어컨이 없었다. 결혼을 마흔에 했으니 사십 평생 집에 에어컨이 없었고 없었으니 쓸 일이 없었다. 그냥저냥 한 여름에도 선풍기를 벗 삼아 적당히 잘 넘겼던 거 같다.
한두 푼 하는 에어컨도 아니고 당장 급할 게 없어 다음 해에나 필요하면 사야지하면서 그냥 넘겼던 거 같다. 그런데! 2018년 여름은 진짜 정말 엄청나게 더웠다. 아내와 난 정말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다. 열대야는 무서울 정도로 더웠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순간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선풍기는 그 해의 더위를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더불어 너무 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에 이미 에어컨을 사는 건 물 건너간 일이었다. 너무 더워 에어컨에 대한 수요가 폭발해 당장 주문을 한다고 해도 여름이 끝나고 에어컨이 집에 들어 올 판이었다. 별수 없이 죽기 살기로 더위를 버텨냈다.
그렇게 2018년 여름을 더위와 장렬하게 싸워 버텨냈고 다음 해 2월인가 에어컨을 샀다. 이후로 문명의 이기는 이런 거구나 하면서 매년 여름 에어컨을 정말 잘 쓰고 있다. 이전에 비해 기술도 좋아져서 에어컨을 켠 다고 해서 전기세가 어마무시하게 나오지도 않았다. 맞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난 어린 시절에 집에 에어컨도 없었지만 에어컨을 켜면 어마무시한 전기세 폭탄으로 집안의 역적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기술발전은 그런 불안도 무마시켜 줬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특히 올해 에어컨을 산 이후로 이렇게 매일 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에어컨을 켜 두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매일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켜 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켜 두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만큼 덥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 따위 저기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릴 만큼 올해 여름은 덥다. 개인적인 기억에 의하면 2018년보다는 못 한 거 같은데(아마도 당시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에 못지않은 더위에 의해 나도 모르게 매일 에어컨을 켜 두고 있다. 아! 또 한 가지 그때와 다른 점은 딸아이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더워도 참을 수 있지만 아이를 그런 환경에 둘 수는 없다.
그야말로 에어컨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 올해, 내 생각을(내 입맛을) 떠나지 않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팥빙수다. 드럽게 더운 여름이지만 그 더위를 방어하고 이겨내기 위한 방편도 은근히 많다. 그중에 음식으로 방어하는 경우만 생각해 본다면 우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여름 과일이 있다. 참외부터 시작해서 수박 그리고 복숭아로 이어지는 여름 과일이 열 불나는 속을 나름 달래 준다. 냉면도 있다. 말 그대로 시원하고 차가운 육수는 먹고 마시는 순간만큼은 뼛속까지 시리게 해 준다. 그리고 팥빙수다!
시원한데 달콤한 팥빙수, 가면 갈수록 다양한 고명이 올라가 더 달고 맛있고 시원한 팥빙수. 그럼에도 여름에 한 번 정도 먹을까 말까였다. 이유는 너무 비싸서! 그 돈이면 냉면을 먹고 말지 혹은 돈을 조금 더 보태 수박을 사 먹고 말지, 아니면 아아를 두 세 잔 사 먹고 말지 하면서 그래도 여름이니 한 번 정도만 먹고 지나왔던 거 같다.
하지만 올해는 덥긴 더운지 그 팥빙수가 시종일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빙수 하면 대명사인 프랜차이즈가 있다. 그 브랜드를 광고하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며 편의상 브랜드 명을 그대로 이야기하겠다. 어차피 다 아는 걸 ‘설땡’이나 ‘땡빙’ 이딴 식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싫다. 아! 내가 유명한 작가라면 조금 조심해야겠지만 절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조심할 필요가 없다. ㅋ
여하튼 여름에 빙수를 한 번 정도 먹으면 설빙에 한 번 정도 가서 먹었다. 요즘은 우유 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빙수가 대세다. 빙수를 파는 대부분의 가게는 거의 눈꽃빙수를 판다. 그 위에 여러 고명을 얹어 이름도 내용도 양도 다양한 빙수를 만들어 판다. 우유, 연유 그리고 필요하면 약간의 물을 섞어 얼려 갈아 낸 그 모습이 곱고 하얀 눈 같아 눈꽃빙수라는 아주 예쁜 이름을 지은 건데 이게 또 만들어 파는 입장에선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바리스타로 일을 할 때 눈꽃빙수를 만드는 기계를 매일 마감하면서 청소하는 게 너무 귀찮고 힘들었다. 특히 끝나갈 시간 즈음해서 빙수 기계를 다 청소하고 이제 30분 정도 뒤면 매장 문 닫을 건데 들어와서 빙수 주세요 그러진 않겠지 생각하는 순간 손님은 들어오고 여지없이 지금 빙수 되지요? 하고 묻는다... 그럼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망울을 하면서 속으론 아니요 하지만 입으론 네 해드릴게요 하면서 자본주의의 웃음을 짓곤 했다. 아...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맛은 있지만 이제 나 하곤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 당당히 돈을 내고 눈꽃빙수를 먹는 손님이지만 그냥 괜히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오지랖인지 스스로의 PTSD인지 뭔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인다. 물론 그렇다고 맛없게 먹는다는 건 아니다. 아주 맛있게 먹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뇌 저기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처 들곤 했다.
그런 불편함이 쌓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나간 과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맛은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사 먹겠지만 누가 사 준다면 두 번 먹겠지만 난 옛날 그야말로 얼음을, 얼음만 드르륵드르륵 갈아서 만든 빙수가 더 좋다. 지나 간 과거에 대한 추억을 특별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때는 ‘야, 인마~’ 이런 성격은 아닌데 빙수는 옛날의 그 빙수가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냥 딱 얼음만 갈아서 팥, 후르츠 칵테일, 약간의 떡과 싸구려 젤리 그리고 우유와 연유를 조금 부어 쓱쓱 비빔밥 비비듯이 비빈 다음에 숟가락으로 퍽퍽 퍼 먹는 그 맛은 눈꽃빙수가 따라올 수 없는 거 같다. 어적어적 씹히는 그 얼음 맛이란... 마지막에 이거 저거 다 섞이고 거의 녹아 물처럼 됐을 때 후루룩 하고 마셔 버리면 해장국을 먹은 건지 술을 한 잔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캬~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요즘 빙수는 앞에도 말했지만 대부분 눈꽃빙수다.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뭔가 답답함과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런 맛을 주는 빙수를 생각해 보니 난 꽤 오래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찾아보면 여기저기 옛날 빙수라고 해서 고급스럽게 놋그릇에 곱게 나오는 빙수가 많지만 그런 거 말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후르츠 칵테일과 달달한 떡인지 뭔지 모를 쫄깃한 식감의 밀가루 그리고 싸구려 젤리가 들어간 그런 빙수는 바로 ‘롯데리아 빙수’다!
정말 정확하게 옛날 그 빙수, 얼음을 갈아 넣고 그 위에 팥, 후르츠 칵테일 그리고 약간의 떡이 올라가고 우유와 연유 대신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퉁 친 그 빙수가 너무 맛있다. 아쉽게도 싸구려 젤리는 없었지만 딸기 시럽이 그 아쉬움을 약간은 대체해 줬다. 가격도 저렴했다. 설빙의 가장 기본 빙수 반값 정도다. 올해 설빙을 두 번 가서 한 번은 일인 일빙을 하기도 했고 며칠 전 대전에 놀러 갔을 때 성심당에 가서 옛날 빙수도 먹었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 솔직히 성심당 빙수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맛을 내줄 줄 알았는데 롯데리아 빙수보다 못했다. 가격도 500원 더 비쌌고...
아직 여름이 완전히 지나가지 않아 한 두어 번 더 빙수를 먹을 기회가 있을 거 같은데 롯데리아 빙수만큼 내가 생각하는 옛 맛과 가격을 보여 주는 빙수가 있을까 싶다.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면야 그런 싸구려 빙수 어디 없겠냐 만은 동네 롯데리아에서 팔고 있는데 굳이 찾으러 나설까 싶기도 하다. 올해 설빙 빙수를 먹고 이어 롯데리아 빙수를 먹고 마지막으로 성심당 빙수를 먹었는데 롯데리아 빙수를 먹은 날, 올해 빙수는 이걸로 됐다. 더 먹는 빙수는 혹시라도 있을 롯데리아 빙수보다 나은 빙수를 갈구하는 본연의 마음 때문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을 담은 글이라는 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양해 바라며 마친다. 롯데리아 빙수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