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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Aug 22. 2024

사회악과 필요악

https://groro.co.kr/story/11534



 우린 세상을 단순하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보고 싶어 한다. 아니 뭐랄까 인간이란 존재가 단순한 건지 무식한 건지 머리 쓰기 싫은 건지 모르겠지만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걸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긴 한데 세상사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간단명료하고도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더 살아가면서 뭘 좀 안다고 깝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복잡해진다. 정확히는 세상은 변하는 거 없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줄 뿐인데 그걸 바라보는 그리고 선택을 해야 되는 내 마음과 머리가 복잡해진다. 해서 점점 이 세상은 흰색과 검정이 아닌 빨강과 파랑이 아닌 그저 회색인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곱게 머리와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하늘은 너무 푸르고 빨간 장미는 너무 빨갛기 때문에 이 세상이 회색이 맞긴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다시 착각하고 오해하고 실수를 하는 거 같다.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대 놓고 ‘액션히어로 물’을 표방하는 영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DC코믹스의 한 캐릭터인 ‘배트맨’을 다룬 이야기다. 배트맨이 다크 나이트라는 이야기인데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배트맨은 박쥐를 모티브로 한 히어로고 우리는 박쥐를 보통 검은색으로 알고 있고 실제로 배트맨의 수트 및 여러 장비가 모두 검은색이다. 그리고 당연히 어두운 밤에 주로 활동을 한다.


 보통 히어로 물이라고 하면 주인공인 히어로를 대표하는 초능력이 있다. 슈퍼맨은 외계에서 온 종족인데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보면 모든 능력치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다. 강하고 빠르고 등등등. 결정적으로 슈퍼맨은 하늘을 날 수 있다. 헐크는 어마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땅을 박차고 오르는 힘을 통해 하늘을 어느 정도까지 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각각의 히어로는 자신 만의 고유한 능력치가 있는데 배트맨은 그 능력치가 ‘돈’이다.



 히어로들은 외계에서 온 인간과 아예 다른 종족이라거나 어떤 실험에 의해 의도치 않은 능력치를 얻게 됐다거나 혹은 특정한 혈청을 맞았거나 아니면 벌레에게 물려 다양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여러 설정을 갖고 있다. 이런 것처럼 배트맨의 능력치는 돈이다. 그것도 무진장 많다. 한 도시를(그 도시의 시민은 3천만 정도라고 나온다. 우리 대한민국의 인구가 5천만 정도인 걸 감안하면 가상의 도시지만 엄청난 규모의 도시다.) 쥐락펴락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다. 저쪽 ‘마블’의 히어로인 ‘아이언 맨’과 비슷하다.



 그 엄청난 돈을 바탕으로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악을 무찌른다가 기본적인 설정이다. 그럼 왜 하필 배트맨일까? 사자나 호랑이를 형상화 한 타이거맨이나 라이언맨일 수도 있고 하늘을 나는 설정이 필요하다면 박쥐보다 멋있고 이미지도 좋은 독수리 같은 걸 생각할 수 있는데 음침하고 어두운 동굴에 살고 병균이나 옮기는 박쥐로 컨셉을 잡았다.



 이유는 당연히 원작에 나오고 다크 나이트 이전 영화인 ‘배트맨 비긴즈’에도 설명이 된다. 우연히 버려진 우물에 빠졌는데 그 속에서 엄청난 수의 박쥐를 보게 되고 공포심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그 공포심을 악의 무리를 통제하는 데 이용하는 방향으로 틀면서 박쥐를 형상화한 히어로가 된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영화인 배트맨 비긴즈에 자세하게 나오니 시간이 된다면 같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 비긴즈에 이은 2편 격이다. 이어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라는 3편도 있다. 이렇게 세 편이 트릴로지를 이룬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세 편을 다 보길 추천하지만 이 글에선 다크 나이트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느 액션히어로 물과 다름없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스케일 큰 블럭버스터 급 영화다. 그런데 보다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안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세네 번을 봤는데 볼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특히 영화에 나오는 여러 사회 실험 비슷한 장면들이 있는데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진실의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한다. 아 물론 여러 생각을 꼭 해야 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엔 사회악이 있고 필요악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조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니 설명할 수가 없다. ‘옛날 옛날에 공주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사악한 용이 공주님을 납치해 용감한 왕자님이 무찌르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뭐 이런 류의 동화 속 세상이라면 복잡할 게 없다. 그저 선한 무리가 힘을 합해 악의 무리에 대항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이야기답게 거의 100% 선이 악을 이긴다.



 하지만 우리 세상은 그리고 배트맨이 살고 있는 고담 시는 그런 곳이 아니다. 썩을 대로 썩은 부패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범죄자와 경찰, 검찰, 정치인 그리고 언론 등등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부류가 서로의 영역을 나누고 도시의 여러 이권을 나눠 먹는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하층민은 그 반대편에서 삶의 고단함에 신음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도시는 만연한 범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딱히 해결할 의지조차 없다.


 그런 도시에 수호자처럼 배트맨이 등장해 악의 무리를 잡아들인다. 그런데 또 웃긴 건 거지 같은 세상은 제도와 규정, 규칙이라는 것들이 있어 사회와 그 사회가 만든 법이 인정하는 집행인이 아닌 누군가가 범죄자를 잡는 꼴은 두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배트맨도 범죄자다. 그러니까 배트맨은 사회악이 낳은 필요악인 셈이다. 사회가 조금 편하자고 악에 물들어 생긴 반대급부 같은 존재다.



 그리고 영화엔 그 사회악과 필요악 사이의 틈바구니에 사생아 같은 존재를 밀어 넣는다. 배트맨이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라면 빛을 받으며 활약하는 검사 한 명이 나온다. 아무리 썩은 도시라지만 3천만 시민이 모두 썩을 순 없는 것이다. 배트맨이 사회악에 대항하는 반대급부처럼 어둠에서 핀 꽃이라면 그 검사 역시 밝은 빛이 비치는 토양에서 핀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존재가 있는데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악당, ‘조커’다. 배트맨이 사회악의 반대급부인 필요악이라면 조커는 그런 배트맨의 반대급부인 혼돈이다. 애초에 사회가 질서 정연하게 굴러갔다면 배트맨이란 존재가 나올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렇지 못하기에 질서를 잡기 위해 배트맨이 등장했다. 그런데 질서를 대표하는 배트맨이 등장하니 질서의 반대급부인 혼란과 혼돈이라고 할 수 있는 조커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커는 악당이라고 할 수 없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에 의해 필연적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지점을 영화는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단순하게 조커가 악당이고 배트맨과 검사가 힘을 합쳐 조커를 물리치는 뭐 그런 내용이 아니다.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진실은 무엇이고 정의는 또 얼마나 허망한지 혼란스럽게 보여 준다.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니 최대한 피해가 적을 건지 등을 시종일관 선택해 나가야 한다. 그런 선택의 과정 속에 깔리는 음악도 압권이다. 그런 식으로 음악이 계속 깔리면 보는 입장에서 보통 피곤할 법도 한데 감독의 역량이 뛰어난 건지 볼 때마다 음악 덕에 집중이 더 잘 되는 거 같다.



 어질러진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등장한 배트맨과 그런 배트맨을 미친개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쫓아다니는 조커 그리고 배트맨이 활동할 수 없는 영역에서 빛을 발하며 세상을 환하게 비추며 바로 잡는 데 일조할 것만 같은 검사... 영화 말미에 보면 왜 배트맨을 다크 나이트라고 하는지 설명이 된다, 그저 박쥐가 검은색이라서 밤에 활동해서가 아닌 보다 깊은 의미로서의 다크 나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그렇다. 그 유명한 ‘인터스텔라’의 감독이다. 예전 영화인 ‘메멘토’의 감독이기도 하다. CG를 싫어하는 감독이다. 인터스텔라를 찍기 위해 실제 옥수수 밭을 일군 감독이다. 핵폭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최근 영화인 ‘오펜하이머’를 찍는다고 했을 때 많은 팬들이 과연 핵폭발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할 정도였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대형 트럭이 뒤집어는 장면이라든지 병원이 폭파되는 장면을 CG 없이 찍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정교한 CG나 실제나 별 차이를 못 느끼지만 감독의 눈은 그리고 마음은 그게 아닌 거 같다. 여하튼 그래서 그런지 보다 현장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영화를 본 여러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혹시 영화가 너무 진지할 거 같아 꺼려지는 분들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고 시원하게 에어컨 틀어 놓고 역시 시원한 맥주나 콜라 마시며 팝콘 혹은 오징어를 와구와구 먹으며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액션히어로 물은 확실하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복잡한 생각 할 거 없이 시간 될 때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Why so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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