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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유치원이 방학을 했다. 정확히는 방학을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말해 이번 주 주말은 공식 방학을 마치고 맞이하는 주말이었다. 방학인 듯 아닌 듯 한 오늘 토요일 오후에(글을 쓰는 시점은 자정이 넘어가 1월 5일 일요일이지만 여하튼 아직 안 자고 있으니, 아니 정확히는 자다 일어나긴 했지만...) 멀지 않은 세종의 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사는 곳이 청주라 세종수목원이 그렇게 멀지 않다. 넉넉잡아 40분 정도 달리면 갈 수 있는 곳이다. 해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가는 곳이다. 가장 최근에 언제 갔는지 기억이 나진 않았다. 언제 갔더라? 뭐 여하튼 이미 아이 유치원 방학은 끝났지만 아직은 주말이라 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최근에 아이가 이래저래 조금 아팠고 날도 추운 겨울이라 어딜 가질 못 했다. 그 부분이 아쉬워 아내와 아이를 이끌고 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내비를 켤 필요도 없을 만큼 단조롭고 익숙한 국도를 따라 수목원을 향해 달렸다. 수목원에 거의 다다라 국회의사당 예정 부지를 보면서 저긴 도대체 언제 공사를 시작하는 거지, 아니 이미 기초공사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목원 폐장을 두 시간 정도 앞둔 시점임에도 주차장엔 차가 많았다. 그렇게 추운 날이 아니어서 가족단위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많이 온 거 같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만 6세 이하 아이는 무료라고 했다. 그런데 증빙서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 가지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서류를 찍어 둔 사진도 없는데 하면서 일단 줄을 섰다. 동시에 아내는 정부 24 앱을 통해 등본이건 뭐건 되는대로 다운을 받으려 했다. 우리 차례가 됐다. ‘아 저 그게 그러니까 아이가 만으로 아직 4세인데 서류가...’ 아내는 아직 서류를 다운로드하지 못했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증빙이 안 되면 그냥 돈을 내야 되나, 일단 서류 다운을 위해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되나 하는 시점에 나이스한 매표소 직원분이 육안으로 아이 만 6세 이하임이 충분히 확인되니 엄마아빠 두 분 입장권 금액만 내면 된다고 했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성인 두 명의 입장권을 구매하고 수목원으로 들어갔다.
폐장까지 시간이 두 시간 정도밖에 없었고 날이 그렇게 춥진 않았지만 여하튼 겨울이라 넓고 넓은 실외를 구경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거의 매번 늘 블랙홀처럼 빠져 들고 마는 ‘사계절전시온실’로 향했다. 사계절전시온실은 실내전시실이며 지중해온실과 열대온실 그리고 시즌별로 컨셉을 달리하는 특별온실이 있다. 기본적으로 다 실내다. 중간에 매점과 카페도 있어 특히 덥고 추운 여름과 겨울이면 이 사계절전시온실만 구경하다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린아이가 있다면 더더욱.
이번에 특별히 다른 곳도 아닌 세종수목원에 온 이유는 특별온실의 컨셉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어른도 좋아하고 아이들은 더 좋아하는 공룡 그러니까 쥐라기가 컨셉이었다. 대충 공룡시대의 식물은 무엇인가 뭐 이런 느낌으로 식물들이 전시됐고 중간중간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엔 유치하지만 공룡들이 모형으로 서 있었다. 조금 신경을 쓴 부분은 그냥 모형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모형도 있었다.(아이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움직이고 있었고 트리케라톱스도 움직였던 거 같다.) 이 움직이는 모형이 아이들 눈에는 조금 무서웠던 거 같다. 만 4세인 딸아이도 처음엔 이빨이 많은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는 티라노사우르스 모형이 무서워 근처에 가질 못했다.
그렇게 유치한 모형이지만 신기한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한 이제 더 이상 직접 볼 수 없는 공룡을 보면서 다양한 식물들을 구경했다. 특별온실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 금방 돌아볼 수 있다. 다 돌아보고 나와 열대온실과 지중해온실도 마저 둘러봤다. 거의 변화가 없는 온실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한 식물이 많은 온실들이다. 더욱이 겨울엔 겉옷을 벗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열대온실은 필수 관람코스라고 할 수 있다. 지중해 온실은 생각보다 선선해서 겉옷을 벗기엔 조금 그렇지만 온실 전체에 허브 향이 꽉 차 있어서 자연스레 힐링이 되는 기분이라 둘러볼 만했다.
세 곳의 온실을 모두 둘러보고 중앙의 매점 옆에 휴식 공간에 앉아 빵도 조금 먹고 이제 저녁을 어디로 먹으러 갈까 아내와 검색하기 시작했다. 청주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바로 청주로 돌아와 저녁을 먹거나 아예 집에서 저녁을 먹어도 됐지만 간만에 차를 끌고 조금 나온 길에 저녁도 세종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검색하다 최종적으로 두 곳이 선정됐다. 한 곳은 중국집이었고 다른 한 곳은 순대국밥을 파는 곳이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아이는 탕수육을 잘 먹어서 중국집도 가고 싶었고 겨울이라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는 순대국밥 집도 가고 싶었다. 순대국밥 집은 아이들을 위한 돈가스도 팔고 있었다.(이게 참 웃긴 거다. 미혼이었던 시절엔 순대국밥 집 같은 곳에서 도대체 왜 돈가스를 파는 거지 의아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이 땅의 육아를 하는 많은 엄마아빠를 위해서 반드시 팔아야 하는 메뉴였다.)
고민한 끝에 추운 겨울임을 감안해 순대국밥 집을 가기로 했다. 3대째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 있는 순대국밥 집이라고 했다. 가 보니 지명은 익히 알고 있던 지역에 있는 순대국밥 집이었고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인증해 준 ‘백 년 가게’였다. 오~ 잘 찾아왔는 걸, 기대가 되는 데 하면서 주문을 했다. 이왕 나온 길에 평소엔 잘 시키지도 않는 수육까지 시켰다. 국밥 두 개에 수육 그리고 아이를 위한 돈가스 하나까지 시키니 주문을 받는 분께서 조금 많을 거 같다고 해서 국밥 하나를 빼고 시켰다.
사실 기억에 의하면 식당에서 내 돈을 내고 거의 처음 시켜 본 수육이었던 거 같다. 국밥이 먼저 나오고 이어 돈가스와 수육이 같이 나왔다. 아내와 국밥과 수육을 나눠 먹었다. 아이는 돈가스를 소스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수육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니 맛있었다. 먹다 보니 어! 아이는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고기를 쓸 수밖에 없는 돈가스를 먹고 있고 엄마랑 아빠는 좋은 고기를 쓴 수육을 먹고 있는 걸 인식했다. 일반적으로 수육이라는 메뉴가 어린아이들이 먹는 메뉴는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 자연스럽게 먹고 있었는데 문득 인식이 된 순간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수육의 살코기를 아이에게 줬다. 하지만 아이 입맛은 어쩔 수 없는 건지 한 점 받아먹더니 이내 안 먹겠다고 하면서 돈가스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건지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건지 애매한 생각을 하면서 맛있게(?) 수육을 마저 먹었다.
다 먹고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처음 주문할 때 많을 거라고 말렸던 직원 분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배 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