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라온 방식 중에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요?
질문을 보고 내가 자라온 방식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자라온 방식을 어떠하다고 규정지을 수 있기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어떻게 자라온 거지? 우리 부모는 나를 어떠한 가치관에 의해 키워온 거지? 그리고 나는 그런 부모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내 부모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아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부모는 어떠한 사람들인지 알아야 하는데 어? 이거 잘 모르겠다. 가족인데 다른 가족도 아니고 나를 낳아 주고 키워 준 다름 아닌 부모인데 잘 모르겠다.
내가 부모조차도 별 관심이 없는 그런 놈인 건지 아니면 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부모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아닌데 또 그렇다고 소위 효도 같은 걸 하기 위해 부단히 부모에게 관심을 가져온 것 같지도 않다. 아니 효도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떠나 우선 부모라는 분들을 하나의 개인으로 바라보질 못했던 것 같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어 온 분들이다. 지금도 엄마, 아빠로서의 모습일 뿐이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고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변명일지라도 이건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부모지만 여하튼 타인이 어떠한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뭐가 좀 웃기긴 하다. 그래도 부모인데 하는 약간의 사회적인 관계에서 오는 죄의식이 자리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내가 자라온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다 본질적인 부분까지 생각해 보기 위해 부모의 존재까지 생각해 본 것이긴 하다. 하지만 너무 근원적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시간을 내서 따로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자라온 방식 중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 바꾸고 싶은 게 있을까? 내가 어떻게 자라 왔지? 내가 어떻게 자라온 건지를 개념화해서 설명하기가 힘드니까 우선 내가 자라오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부분과 후회스럽고 바꾸고 싶은 경험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될 거 같다.
유아시절은 거의 기억이 안 나니 넘어가고 초등시절부터 생각해 보는데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후회가 든다. 이는 비단 초등시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등시절에 보다 적극적으로 운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초등시절에 축구를 했다. 취미가 아닌 선수생활을 위한 축구를 했다. 적극적으로 축구를 해서 중등 진학하는 과정에서 축구를 하겠다고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지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중등시절 축구를 계속하는 건 어땠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중등시절의 기억은 나쁘지 않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공부를 꽤 잘했고, 공부하는 과정이 딱히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중등시절에 말 그대로 자율의지에 의해 공부한 것처럼만 했다면 뭐든 할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은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등시절 고등 진학을 앞두고 세 들어 살던 주인집 형의 외고 한 번 가 보라는 조언을 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남기도 한다.
고등 시절엔 정말 즐겁게 보냈지만 성과(?)라는 측면에선 최악의 시절이었다. 중등시절에 자율의지를 다 써 버린 건지, 의지가 박약하고 게을렀다. 적극성도 부족하고 겁도 많아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부모님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꾸고 싶은 게 뭔지 알겠다. 내가 바꾸고 싶은 건 박약한 의지와 게으름, 두려움 그리고 부족한 적극성이다. 대학시절도 마찬가지로 늘 생각은 많아 이것, 저것 해보고 싶다고 다짐은 참 많이 했는데 언제나 항상 다짐이 끝이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편입을 해 보자고 했던 것도, 다시 수능을 봐서 원하는 사범대학을 가보자고 했던 것도, 이도 저도 안 되면 우선 다니고 있는 학교의 학과에 맞는 자격증을 따자고 했던 것도, 진짜 원하는 꿈이라고 간간히 떠들던 가수에 대한 도전도, 졸업하기 전 커피를 한 번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한 것도 모두 다 의지박약과 게으름, 두려움 그리고 부족한 적극성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런 예는 더 있다. 운 좋게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하게 됐으나 일이 맞지 않는 건지 능력이 부족한 건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맸다. 그러면서 또다시 한번 수능을 봐 원하는 대학에 가보자고 한 것도, 뭔가 성향에 맞을 거 같다고 준비해보자고 했던 공무원도 모두 역시 다짐만으로 끝이 났다.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상황에서 의지박약과 게으름, 두려움 그리고 부족한 적극성이란 벽에 부딪혔다.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포기 같지도 않은 포기를 정말 많이 해 왔던 것 같다. 그래 바꿔 봐야 한다면 얇고 얇은 의지와 게으름, 두려움과 부족한 적극성이다. 물론 자라온 방식 중에 바꿀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 보니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한 것 같은데 이와 상응하게 긍정적이며 좋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된 방식들도 많다.
이 부분도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이번 질문은 바꿨으면 하는 방식이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 방식을 아직 살아온 날들보단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 앞으로의 삶에 적용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