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텼다.

2024.03.05 /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

by 정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저는 돌아오는 격주를 맞이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 정기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오늘은 상담을 들어가기 전부터 우울함에 눈물이 맺혀 있을 만큼 우울했습니다. 예전이라면 이 우울함을 이유 모를 우울이라고 칭하겠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이 우울함이 공허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른 아침부터 깨끗하게 정리된 정신건강의학과의 대기실에서 혼자 공허한 우울감에 눈물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호명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부름에 조금 목 막힌 대답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전의 검진 결과상으로 저는 많이 피로해져 있는 상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스스로가 느끼기엔 어떠한지 여쭤보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공허해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되물으셨습니다. 어떻게 공허하냐고 말이죠. 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누가 날 좀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누가 사랑해 줬으면 좋겠냐고 여쭤보셨습니다. 저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습니다.

어머니요.

그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를 잘 챙겨주지만 일이 바쁜 친구, 나는 좋아하지만 나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 언제나 내 편이라는 친오빠 등. 그러나 결국 제 입에서 나온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지만 해갈받지 못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한 건 오래되었습니다. 아니 조금 이상한 말이네요. 아이라면 누구나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제겐 해갈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젠 어른들의 사랑이 필요 없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때의 불완전한 해갈이 제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왜 어머니의 사랑을 바라는지 여쭤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제법 큰 사람입니다. 너무 개인적이고 글을 읽는 분들의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겠지만 의사 선생님껜 숨김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공허해서 너무나도 우울하다고 말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우울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상태를 물에 잠긴 듯한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물에 빠져서 다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되지 않고 물에 빠져 점점 깊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 만성적인 우울감을 설명하시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잘 버텨왔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더 나아지기 위해 이렇게 병원도 다니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점에서 나아지고 있는 것이니깐. 낫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짓지 말고 나을 거라고, 나을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만성적인 우울감에 치료를 받으면서도 치료를 포기하는 우스운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만성적인 우울을 오히려 버텨왔기에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희망을 얻은 한 마디였습니다.

이 만성적인 우울증을 잘 버텨왔다는 것을 상기하면 저는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이겨나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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