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일기3

23.05.08 / 두 번째 정신과 진료

by 정윤

5월 8일, 공황 장애를 진단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대로 또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통상적인 병원들과 비교해 늦은 시각에 문을 여는 병원 대기실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데스크에 초진 서류를 건네는 대신 이름 석 자만으로 접수가 끝났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름 석 자를 말하고 접수를 끝낸 나는 대기실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오늘은 지난주와 다르게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시끌벅적한 뉴스 속 앵커와 전문가들의 설전만이 조용한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긴 대기시간에도 나는 뉴스를 보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켜고 메모 앱에 그동안의 증상에 대해 적어나갔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고, 크게 심호흡하지 않으면 호흡이 막힐 때가 있다.

- 하지만 심호흡의 크기가 작아졌다. 이전에는 폐를 100% 쓰는 느낌으로 심호흡해도 10%도 되지 않는 산소를 흡입하는 느낌이었다면 이젠 폐를 100%까진 쓰지 않아도 된다.

- 흉통 역시 없어졌다.

- 가끔 오른쪽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생겼다.

- 약을 먹으면 너무나도 졸리고, 무기력해져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지금은 정리해서 적었지만, 언제 이름이 불릴지 모르는 대기실에선 서둘러 적느라 뒤죽박죽인 내용들이 나열됐다. 그렇지만 곧바로 일주일간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건 어제 적었던 일기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일기를 적기 시작한 건 좋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서 일기에 대해 법의학자 이호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희망이 없이는 일기를 쓰지 않아요. 단지 방향을 못 잡아서 그걸 일기에 쓰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나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애정이고 삶에 대한 의지가 있는 거예요”

당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나의 일기는 온통 삶의 고통과 그걸 끝내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을 얻은 것 역시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살고 싶었기 때문에,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기 때문에 일기를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명확한 병명을 알고 있는 지금은 저 말에 더 큰 희망을 느낀다.

이렇게 하나씩 남기는 나의 역사의 기록이 나를 긍정적인 미래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다시 이야기가 삼천포를 흘러 들어가 버렸다…

다시 병원 대기실로 돌아가 보자면 일주일간의 나를 돌이켜보는 사이에 어느덧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진료실 문을 세 번 똑똑똑 두드리고 들어가 일주일 만에 만나는 의사 선생님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전 처음 의사 선생님께 건넸던 인사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확연히 밝아진 목소리였다. 의사 선생님은 지난주와 똑같은 평이한 목소리로 내 인사를 받아 주시고 물으셨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밝아진 목소리가 무색하게 나는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의사 선생님께 그동안 겪었던 일을 적어왔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자 의사 선생님이 웃으셨다. 그 웃음에 순간 머쓱해졌지만 나는 천천히 대기실에서 적어 온 내용을 의사 선생님께 읽어 드렸다.

내 말이 시작되자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짧게 “네, 네.” 하고 대답하시면서 타이핑을 시작하셨다. 증상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체감이 갈 정도로 조금은 나아졌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끄덕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계속해서 졸리고 무기력해진다는 이야기에 아까와는 다른 대답을 건네주셨다.

신경안정제에 대한 부작용이라는 것이었다.

“약을 더 강하게는 못 쓰시겠네요.”

사실 나는 이런 증상이 약 부작용보다는 내 우울증이 공황 장애가 잠드는 틈을 타 빠져나온 탓이라고 여겼던 터라 또다시 예상외의 대답을 듣게 된 거였다.

의사 선생님은 이어서 약에 대한 내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호흡이 힘든 부분은 신경안정제를 강하게 사용하면 금방 좋아집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졸릴 겁니다.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을 거예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미 “눈이 풀렸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벌써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내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 약 복용에 대한 계획을 설명해주셨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약도 아주 약한 약이에요. 그런데 이 약에도 이렇게 졸리시고 무기력해지신다면 더 강한 약은 사용하실 수가 없어요. 이렇게 약에 예민하신 타입이 있으세요. 일단 이 약에 적응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리고 약은 짧게 쓴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길고 오래 쓴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내겐 또다시 닥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당당하게 의사 선생님께 메모한 내용을 읽던 패기는 사라지고 금세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투병이 길어진다면 나는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내 상태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 사용하던 약을 그대로 사용하고 2주 뒤에 다시 만나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알겠다고 답하고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 지금 제가 먹는 약은 신경안정제뿐인가요?”

“아니요. 신경안정제랑 세로토닌 억제제입니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니 똑 부러지는 환자 같아 보이지만 사실 투병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말에 또 잠시 멍해졌다가 진료실을 빠져나오기 전 허겁지겁 문 앞에서 여쭤본 질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서툰 환자였다.

세로토닌이라는 말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두 번 여쭤봤던 사실 역시 아직 서툰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렇게 문 앞에서 선생님을 붙잡고 질문을 건네던 나는 세로토닌을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감사 인사와 함께 2주 뒤에 뵙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진료실을 나섰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정신과 진료가 끝났다.

이번 진료는 얼렁뚱땅 찾아가 어벙하게 끝났던 첫 진료와 다르게 적어갔던 궁금증을 모두 해결하고 돌아왔다.

약에 예민하다는 예상치 못 한 상황 때문에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괜찮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치료 경과를 생각했을 때 나는 확실히 약물에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비교해서 오늘이 확 좋아지진 않아요. 약을 계속 먹어도 어제와 비교해서 확 숨쉬기 좋아졌네? 그렇진 않을 겁니다. 대신 천천히 좋아질 거예요. 어제와 비교해선 변화가 없을 수 있지만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숨쉬기가 좋아질 겁니다. 그런 식으로 천천히 좋아지는 게 느껴질 거예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확실히 지난주와 다르게 숨쉬기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공황 장애가 걸리기 전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숨쉬기가 힘들다. 지금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큰 심호흡을 내쉬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숨쉬기 힘들다고 실망하고 푸념하기보단 지난주와 비교해서 큰 심호흡의 횟수가 줄어든 점, 심호흡의 크기가 달라진 점 등 여러 가지 호전한 점들을 되새기면서 호전되어가는 증상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어질 투병 생활이 너무 무서울 테니깐 말이다.

글 속에 계속 나는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고 있다고 적고 있지만 사실 무섭다.

나는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

평생 답답한 호흡을 갖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문득 이런 공포감이 나를 덮칠 때가 찾아온다.

오늘 진료실에서도 그런 공포감이 들었다. 약을 사용해야 할 기간이 길어질 거라는 이야기와 반비례하게 짧았던 의사 선생님의 타이핑과 상담 시간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상황은 객관적으로 전혀 공포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정신과 상담에서 의사 선생님의 타이핑과 시간이 짧은 것은 기록하고 진단할 악화 상황이 없다는 것을 뜻할 테니깐 말이다. 일전에 정신병의 악화는 의사 선생님의 타이핑 속도와 비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나는 악화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그렇게 나는 약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객관적인 사실을 되짚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는 공황 장애라는 병의 근본적인 공포감에 휩싸여 두려움에 빠질 때가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때로는 타당한 이유와 함께, 때로는 얼토당토않는 상황 속에서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 되새겨야 한다. 증상이 완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나는 공황 장애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계속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사실 아직까진 이런 긍정적인 생각의 토대가 자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세로토닌이라는 말조차 오늘 처음 들어보고 관련 정보를 찾는 내내 고개를 갸웃 거린 내가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다!! 하고 외치는 건 어쩌면 무지의 힘일지 모른다. 때론 그 무지의 힘에 의존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무지는 결국 나를 완치의 길로 안내해주진 않을 것이다.

나를 완치의 길로 안내해주는 건 스스로 공황을 알고, 배우고, 그 공포감을 이겨나가는 것 일 테니깐 말이다.

나는 아직 공황 장애에 대해 잘 모른다.

투병 중이고, 병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정보를 찾고 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 병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처음으로 의문이 생기는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공황 일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