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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Jun 17. 2024

박치기 왕, 김일

그 시절 우리들의 영웅

"쿵"

"빡"

"그만해 녀석들아, 다칠라."


집집마다 엄마들은 박치기하는 애들을 말리기 바빴다. 밥하다가도 말리고 빨래하다가도 말렸다.

만만한 상대만 보이면 그들은 들이받으려 했다. 상대는 베개일 수도 있다. 문설주일 수도 있다. 어린 동생을 받았다가는 엄동설한, 삼복더위에도 쫓겨난다. 쫓겨난 아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들이받았다.


그들은 왜 이렇게 박치기에 집착했는가. 도대체 왜 때문에.*

그것은 바로 6,70년대 국민 스포츠 영웅, 프로 레슬링 박치기 왕, 김일 선수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일 선수의 주무기인 박치기는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기술이다. 제대로 부딪치면 머리뼈나 뇌 등에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꼬맹이들이 멋 모르고 영웅을 흉내냈다가는 다칠 수도, 기절을 할 수도 있다.

김일 선수에게도 박치기는 쉬운 기술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부터 혹독하게 훈련한 그는 콘크리트, 나무 기둥 등 단단한 물체에다 밤낮으로 박치기 연습을 하다가 두개골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한다.


대체 왜 그렇게 위험한 기술을 써야만 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자신도 매우 힘들었지만 국민들이 자신의 경기를 보고 열광하니 더욱 열심히 수밖에 없었다.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은 아침 댓바람부터 나라가 떠들썩했다. 온종일 레슬링이 화두였다.

버지는 귀가를 서두르셨고 엄마는 일찌감치 설거지를 마치셨다. 거리가 한산했던 반면 사람들은 헤쳐 모였다. TV를 내놓은 주인집으로, 동네 가게로, 친구집으로. 무릇 큰 경기일수록 함께 모여 희로애락을 나누는 것이 제맛이다.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물결이 그랬듯이.

우리 가족도 주인집 대청마루로 이동했다.


링 위에 한복을 입고 나타난 김일 선수를 보는 순간부터 우리의 애국심은 불타올랐다.

하지만 레슬링 경기라는 것은 늘 일방적이지 않다. 김일 선수가 상대로부터 공격 받는 위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상대가 흉기를 감추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흉기로 가격 당한 김일 선수의 이마에선 흑백TV 너머로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연호했다.


"김일! 김일!"

"기밀 기밀."

나도 덩달아 외쳤다.


링에 쓰러진 김일 선수의 양 어깨가 닿았고 심판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원, 투, 쓰"

쓰리가 끝나기 전에 김일 선수의 어깨가 튀어 오르며 한 고비가 넘어갔다. 그의 눈이 맹호처럼 이글거렸다. 사람들은 다시 연호했다.


"박치기, 박치기."


김일 선수는 상대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전력으로 박치기했다. 상대 역시 소 심줄 같이 질기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결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김일 선수는 남아 있는 모든 힘과, 응원의 절규와, 우주의 기운을 모두 끌어 모아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상대가 나자빠졌다. 원, 투, 쓰리가 지나도록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와아아아아"

"김일! 김일!"


모두 부둥켜안으며, 뛰며, 더러는 울며 기쁨을 가누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 환호하셨다. 어버지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엇을 나는 보았다. 누가 볼까 얼른 훔치시는 것도 보았다.

나는 가슴이 벅찼다. 미운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 기쁨을 노래하는 우리는 모두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6,70년대. 산업 발전으로 공장들이 쉴 새 없이 가동되면서 국민들은 더욱 힘들게 일해야 했던 시기이다. 아무리 일해도 제자리걸음인 돌파구 없는 삶 속에서, 영웅은 그들의 거친 가득, 꿈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흐르는 피가 눈앞을 가려도 부릅뜬 눈으로 그는 싸웠다. 힘겨운 삶 속에도 결국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마다 심어 주었던, 그는 진정한 국민 영웅이었다.


김일 선수는 생전에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은 바 있다. 영면한 후인 2018년에는 대한 체육회가 선정한 '스포츠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세월이 가도 그 시절의 우리는 결코 잊지 않는다.




김일 선수가 이기면 아이들의 박치기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우리집 두 오빠들도 엉켜서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큰오빠가 김일인 모양이었다. 안토니오 이노키인 작은오빠가 꼬꾸라졌다가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오빠가 박치기 할라 그래요."

"하지 마라 했다이."

좀비 같은 오빠는 방향을 돌려 다른 희생양을 찾았다.

쿵. 쿵. 쿵.

애꿎은 문설주만 들이받고 있었다.






(*왜 때문에 란 말은 아빠 어디가란 프로그램에서 윤민수씨의 아들 윤후군이 만들어 낸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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