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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Jun 24. 2024

약밥은 어떻게 소울 푸드가 됐을까?

나의 소울 푸드

외가댁에 잔치가 있었다. 아마도 그날은 외할아버지의 생신이 아니었나 싶다. 이모들, 외삼촌들을 비롯해서 많은 친지들이 모여들었다.

온갖 산해진미, 고량진미가 잔칫상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까 거운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특이한 음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알갱이는 탱글탱글 밥알이 분명한데 색깔은 양갱인 듯하고, 애매하게도 떡함께 삼열종대를 이루고 있 그것.


것은 무엇인고?


밥도 아닌 것이 양갱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떡이라 할 수도 없는, 참으로 기이한 음식이 단 잡숴 봐 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 한번 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바람과 달리 끝내 내 차례까지 오지 못했다.


엄마께 여쭤보았더니 그것은 '약밥'이라 하셨다.

약밥이라... 이름도 이롭구나. 밥은 밥인데 약이 되는 밥이라니 참으로 가상했다.




집에 와서 엄마가 내 푸념을 들으시고 "그까짓 것 뭐라고." 하시면서 당장 만들어 주셨다.

약밥은 불린 찹쌀과 물, 간장, 설탕, 대추 등을 넣어서 밥처럼 지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음식이다.

엄마는 집에서 제일 큰 솥단지에 가득히 약밥을 만드셨다. 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도록. 삼이웃에 냄새를 피웠으면 맛을 보여주는 것이 이웃 간의 정이자 암묵적 룰이다.


이윽고 완성된 약밥을 보았을 때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바로 이것이로구나.


솥 단지에서 좌르르 흐르는 윤기

내 뱃속에서 르르 구르는 허기


그루브를 타며 나는 드디어 첫맛을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천지개벽할 맛었다.


쫀득하기로는 떡에 비견할 만했고

달큰하기로는 양갱에 비견할 만했으나

입안 가득 진주알을 흩뿌린 듯한 감촉은

그 무엇도 비견할 바가 못 되었으니...


나는 그때부터 하루 종일 약밥만 먹어댔다. 하도 먹어서 엄마가 말리셨다. 배탈 나면 어떡할 거냐고 하시는데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우겼다. 엄마 몰래 부엌에 잠입해서 이웃에 줄 것까지도 탐했다. 아무리 먹어도 약밥은 넘쳐났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우리집은 약밥 공장이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어느 순간 뱃속에서 철컥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이 와 버렸다. 음식이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그것은 식체였다.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고 메슥거리고 숨 쉬기 힘들었다. 나는 방바닥을 굴렀다.

엄마가 나를 보시고 깜짝 놀라시며 상비약통에서 소화제를 꺼내 먹이셨다. 그리고 배와 손을 만져 주셨다.

나는 결국 드러눕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약밥은 그렇게 내게 약이 아닌 병만 주고 떠나갔다.


그 후로 약밥은 나를 괴롭히는 이름이 되었다. 생각만 해도 구토증이 왔다.

고등학교 때 학급비로 떡을 맞춰 나눠준 적이 있는데, 받아 보니 백설기 두 덩이와 약밥 한 덩이였다. 약밥을 본 나는 질겁하여 짝꿍에게 떠넘 버렸다. 다행히 짝꿍은 대환영이었다.

그렇게 약밥은 잊힐 줄 알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아파트 상가 떡집에서 우연히 약밥을 보게 되었다. 뜻밖에도 너무나 반가웠다. 마치 오해로 멀어진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설렘이었다. 세월에 씻겨 간 듯, 안 좋았던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간절했던, 그래서 엄마가 산더미처럼 만들어서 소원을 풀어 주셨던 아련한 유쾌함이 남았을 뿐이었다. 맛도 되찾았다. 그날 이후 약밥은 식체의 오명을 벗고 나의 최애,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어떤 음식이 소울 푸드가 되려면, 단지 맛이 있다는 좋은 느낌을 넘어 영혼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 음식을 먹었을 때 힘이 나고 위로받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지친 영혼은 되살아난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그 음식에 얽힌 특별한 추억, 경험 등의 배경 서사가 있을 것이다.

어떤 가수는 가난했던 무명시절, 살기 위해 마지못해 먹던 그 지긋지긋한 음식이 지금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고 한다. 성공에 안주하며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때 그 음식은 자신을 일깨워 초심을 되찾게 한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공부할 때 간단히 때우던 그 요깃거리가 소울 푸드라 했다. 부실한 음식임에도 왠지 그것만 먹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시간을 달려온 나는 약밥에서 옛 추억을 만난다. 딸에게 마음껏 먹이고픈 엄마의 마음이 배어 있다. 배탈 나는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먹던 철없는 아이의 사랑스러움도 한 스푼 들어 있다. 약밥이 매개가 되어 그날의 행복했던 기억이 오늘로 배달된다. 입안 가득 탱글탱글한 웃음이 이리저리 굴러 다니다 톡톡 터진다.

약밥은, 결국은 내 인생에 약이 되고 만 것이다. 바로, 소울 푸드라는 위대 이름으로.



 





(*소울 푸드 원래 미국 흑인의 고유 음식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혼을 깨우는 음식, 영혼을 울리는 음식으로서 소중한 추억이 있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식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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