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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Jul 01. 2024

달빛 그리움

남겨진 마음

여섯 살 어느 야심한 밤에, 나는 툇마루에 홀로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혼자 울기 좋은 곳이었다. 울다 보니 코가 퉁퉁 부어 숨쉬기가 곤란했다.

피노키오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데 나는 울면 코가 부어올랐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동화인지도 모를 일이다.

툇마루에는 거울이 걸려 있었다. 울면서 거울을 보았다.

내 코 돌리 도... 

그래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나를 두고 외할머니댁에 가셨다. 친척 집에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나를 데리고 가면 지장이 있을 것이기에 이번에는 혼자 가시게 되었다. 태어나서 엄마와 떨어져 자 본 거의 없었다. 어쩌다 시골 가셨다가 밤늦게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울먹울먹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젖을 늦게 뗐다고 하셨다. 몇 살에 뗐는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손바닥을 펴고 엄지를 포시 접어 본다.

12월 끝자락에 태어나서 며칠 만에 두 살이 되었으니 이 점은 감안했으면 좋겠다.

막상 떼려고 하면 젖샘이 넘쳐 조금만 더, 하다가 늦어졌다고 하셨다. 요즘 같으면 유튜브에 '젖을 꼭 떼야하는 일곱 가지 이유' 라는 영상이 제작되어 있법 하지만, 세상만사 칼로 무 자르듯 그리 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통에 엄마와 더 강력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다.


나는 어느 정도 모험심이 발동하기도 하여 웃으며 엄마를 보내드렸으나 길 모퉁이로 엄마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이내 마른 풀잎처럼 시들시들해졌다.


낮에는 오빠들이 놀아 주고 저녁에는 아버지가 일찍 퇴근해서 밥을 안치셨다. 안타깝게도 밥덩이가 목에 켁하고 막혔다. 몇 숟갈 못 뜨고 밥숟갈을 놓았다. 어버지가 복숭아 통조림을 차려 주셨다. 그 맛있는 것이 삶은 무 조각 같았다, 한 조각 먹고는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어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이렇게까지 정성을 다해주시는데 우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말귀 알아들을 때부터 모두가 직면하는 생애 최초 밸런스 게임.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덜컥 정답을 얘기해 버리지만 나는 좀체 안 넘어가는 타입이었다. 두 분 모두를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엄마 없다고 아빠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나는 일찍 잠을 청했다.  엄마 베개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니 눈물이 났다. 베갯잇을 적시다 잠이 들었다.

전래동화에서 들은 오싹한 얘기들이 엉켜 있는 악몽을 꾸었다. 그 마저도 몇 시간 못 자고 깨어 조용히 툇마루로 나왔다. 단칸방에 살면서 혼자 울 수 있는 곳 거기 뿐이었다.

달 보고 울고, 울고 나면 거울 보고 코가 얼마나 부었나 관찰하고를 무한 반복했다. 시간은 가는지 오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달빛 아래 한 줄기 풀벌레 소리만이 고독을 달래 주었다.



살구빛 바랜 분첩

토닥여 줄 이 없고


오갈 데 잃은 덧신

속절없이 뒹구는데


달빛에 두고 간 그림자만

긴긴밤을 서성이네


(by 고운로)


하늘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별들은 하나둘 흐려지다 사라졌다.

눈이 스르르 감긴 채로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다 잠깐 거울을 봤다. 정아인지 코봉이인지 알 바 아니었다.




눈앞에 어슴푸레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정아, 엄마 왔어."

네, 오셨을 테지요, 간밤에도 그리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저 꿈이라면 깨지나 않으면 좋으리요마는......

"눈을 반쯤 뜨고 자네, 엄마가 옷도 사 왔는데."


나는 종종 눈을 뜨고 잤다.

대학 시절 새마을 열차를 타고 귀성하는데 승무원이 지나가다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눈을 어떻게 반이나 뜨고 자요?

무섭데."

내가 자신을 빤히 보더란다. 뭐 부탁할 게 있나 싶어서 다가가는데 갑자기


"드르릉! "


코 골더란다.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고 했다.


내가 본 엄마가 꿈속의 엄마인지, 새벽차 타고 달려오신 엄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와중에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제 가시면 아니 됩니다...

"어머나 자다가 웃는 것 좀 봐, 하하하."

이제 가시면 아니 됩니다...




엄마는 몇 해 전 정말 가셨다. 5월 꽃 만발하던 화창한 날에

꽃 저고리 입고, 꽃잎 속에 고이 누워.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엄마 없이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낯선 슬픔 위로

꽃잎 떨어지네


낯선 어둠 위로

달빛 쏟아지네...


그날은 밤하늘 달님도

눈물 같은 달빛 뚝뚝 흘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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