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그리움

남겨진 마음

by 고운로 그 아이

여섯 살 적 어느 야심한 밤에, 나는 툇마루에 홀로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혼자 울기 좋은 곳이었다. 울다 보니 코가 퉁퉁 부어 숨쉬기가 곤란했다.

피노키오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고, 나는 울면 코가 부어올랐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동화인지도 모를 일이다.

툇마루에는 거울이 걸려 있었다. 울면서 거울을 보았다.

내 코 돌리 도...

그래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나를 두고 외할머니댁에 가셨다. 친척 집에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나를 데리고 가면 지장이 있을 것이기에 이번에는 혼자 가시게 되었다. 태어나서 엄마와 떨어져 자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시골 가셨다가 밤늦게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울먹울먹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젖을 늦게 뗐다고 하셨다. 몇 살에 뗐는지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손바닥을 펴고 엄지를 포시 접어 본다.

12월 끝자락에 태어나서 며칠 만에 두 살이 되었으니 이 점은 감안했으면 좋겠다.

막상 떼려고 하면 젖샘이 넘쳐 조금만 더, 하다가 늦어졌다고 하셨다. 요즘 같으면 유튜브에 '젖을 꼭 떼야하는 일곱 가지 이유' 라는 영상이 제작되어 있법 하지만, 세상만사 칼로 무 자르듯 그리 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통에 엄마와 더 강력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다.


나는 어느 정도 모험심이 발동하기도 하여 웃으며 엄마를 보내드렸으나 길 모퉁이로 엄마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이내 마른 풀잎처럼 시들시들해졌다.


낮에는 오빠들이 놀아 주고 저녁에는 아버지가 일찍 퇴근해서 밥을 안치셨다. 안타깝게도 밥덩이가 목에 켁하고 막혔다. 몇 숟갈 못 뜨고 밥숟갈을 놓았다. 어버지가 복숭아 통조림을 차려 주셨다. 그 맛있는 것이 삶은 무 조각 같았다, 한 조각 먹고는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어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이렇게까지 정성을 다해주시는데 우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말귀 알아들을 때부터 모두가 직면하는 생애 최초 밸런스 게임.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덜컥 정답을 얘기해 버리지만 나는 좀체 안 넘어가는 타입이었다. 두 분 모두를 섭섭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엄마 없다고 아빠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나는 일찍 잠을 청했다. 엄마 베개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니 눈물이 났다. 베갯잇을 적시다 잠이 들었다.

전래동화에서 들은 오싹한 얘기들이 엉켜 있는 악몽을 꾸었다. 그 마저도 몇 시간 못 자고 깨어 조용히 툇마루로 나왔다. 단칸방에 살면서 혼자 울 수 있는 곳은 거기 뿐이었다.

달 보고 울고, 울고 나면 거울 보고 코가 얼마나 부었나 관찰하고를 무한 반복했다. 시간은 가는지 오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달빛 아래 한 줄기 풀벌레 소리만이 고독을 달래 주었다.



살구빛 바랜 분첩

토닥여 줄 이 없고


오갈 데 잃은 덧신

속절없이 뒹구는데


달빛에 두고 간 그림자만

긴긴밤을 서성이네


(by 고운로)


하늘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별들은 하나둘 흐려지다 사라졌다.

눈이 스르르 감긴 채로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다 잠깐 거울을 봤다. 정아인지 코봉이인지 없었다.




눈앞에 어슴푸레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정아, 엄마 왔어."

네, 오셨을 테지요, 간밤에도 그리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저 꿈이라면 깨지나 않으면 좋으리요마는......

"눈을 반쯤 뜨고 자네, 엄마가 옷도 사 왔는데."


나는 종종 눈을 뜨고 잤다.

대학 시절 새마을 열차를 타고 귀성하는데 승무원이 지나가다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눈을 어떻게 반이나 뜨고 자요?

무섭데."

내가 자신을 빤히 보더란다. 뭐 부탁할 게 있나 싶어서 다가가는데 갑자기


"드르릉! "


코 골더란다.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고 했다.


내가 본 엄마가 꿈속의 엄마인지, 새벽차 타고 달려오신 엄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와중에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제 가시면 아니 됩니다...

"어머나 자다가 웃는 것 좀 봐, 하하하."

이제 가시면 아니 됩니다...




엄마는 몇 해 전 정말 가셨다. 5월 꽃 만발하던 화창한 날에

꽃 저고리 입고, 꽃잎 속에 고이 누워.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엄마 없이 바라본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낯선 슬픔 위로

꽃잎 떨어지네


낯선 어둠 위로

달빛 쏟아지네...


그날은 밤하늘 달님도

눈물 같은 달빛 뚝뚝 흘렸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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