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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똥 Aug 20. 2021

안 미안해서 미안해

Sorry not sorry

  한국인은 왜 길거리에서 부딪혀도 사과 안 해요?




  프랑스인들은 부딪혔을 때, 길을 가로막았을 때, 재채기를 했을 때 등 거의 모든 상황에서 Excusez-moi(익스퀴제-므와; 영어의 익스큐즈 미)를 남발했다. 우리말로는 ‘실례합니다’의 의미이지만 직역하면 ‘나를 용서해주세요’라는 뜻이다. 그런 사소한 걸로 용서를 해달라니, 나에게는 좀 유난스럽게 들렸다. ‘그 자존심 세다는 프랑스인들이 저렇게 사과를 자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인들은 중요하고 큰 잘못을 할수록 사과를 안 한다. 만약 프랑스인 친구가 약속 시간에 조금 늦거나, 깜박하고 문자메시지를 씹었다면 Je suis desole(e)(즈쒸데졸레, 미안해 혹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보다 더한 잘못을 하면? 사과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딸 셋,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모두 따로 살았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싱글벙글하며 ‘우리 아들이 핸드폰 사줬어. 한번 볼래?’라며 핸드폰을 보여줬다. 폴더폰이었다. 당시 나는 아이폰 4를 사용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갤럭시 S2가 출시되었다.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부럽네요!’ 이름 모를 브랜드에 스마트폰도 아닌 핸드폰을 보고 나는 인사치레로 과하게 칭찬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그렸던 나의 핸드폰 아이폰4, 2012년 당시 꽤 최신폰이었다.

     

  아주머니는 매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는데 집 건너에 있는 마들렌 성당의 미사에 주일마다 참석했다. 나는 일요일마다 코인 세탁소에 가 빨래를 했다. 여느 날처럼 코인 세탁소에 앉아있는데 하우스메이트한테 전화가 왔다.

     

  “너… 아주머니 핸드폰 가져갔어?”

     

  아주머니의 핸드폰이 없어졌는데, 내가 핸드폰을 훔쳤다고 의심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아주머니는 늘 ‘우리는 가족이야’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고 나를 부르는 호칭도 Ma belle!(마벨, 예쁜아)이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의 핸드폰은 안방 침대 밑에서 발견됐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주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 말다툼을 했다. "아주머니, 저 도둑 취급한 거 사과 안 하세요?" 아주머니는 우물쭈물하다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뱉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사과를 잘 안 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사과하지 않는 경우가 또 있다.




 

앙제 우리집 앞, 시내에 있었기 때문에 집 바로 앞에 약국, 술집, 까르푸 등 상권이 조성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학기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 나는 2주간 유럽 여행을 갔다. 여행에 필요 없는 짐을 한국으로 부쳤는데,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우체국이 있었다. 짐을 들고 우체국으로 들어가는데 고성이 들렸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젊은 남자가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주 중요한 문서가 배달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남자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화날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창구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C’est pas ma faute(쎄빠마폿뜨,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왜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시는 거죠?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어렵게 시험을 통과한 9급 공무원들이 의외로 직장을 많이 때려치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에 수십 명씩 찾아와 호통을 치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무원뿐 아니라 서비스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아야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그 상대가 누구라도. 배달원의 잘못으로 우편물이 누락되었으면 그것은 우편물을 빠뜨린 배달원의 잘못이지 우체국 상담 직원의 잘못이 아니다.     


  ’C’est pas ma faute(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프랑스인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영화와 노래 제목으로 쓰일 정도다!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는 것, 잘못의 주체가 아닌 행정직원이나 상담원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기어코 받아내지 않는 것, 그것이 마땅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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