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기간을 오래 지속했을수록 그만큼 비대하게 사진첩과 클라우드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을 사진과 영상들. 한 때는 매일 애정을 주고받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자주 보고 싶어 하던, 그렇게 늘 곁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 웹 상의 어떤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고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거다. 어떤 이는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인지라 차마 지우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별하는 즉시 모든 기록을 지우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또 간혹 사진첩 속에 클라우드 창고 속에 그것들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른 채 세월을 살아가다가 훗날 만난 새로운 연인과의 다툼의 요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명 판도라의 상자, 물론 사진 수위에 따라 다툼의 정도도 다르겠지.
내가 열렬하게 사랑했던 상대의 사진은 그 끝이 어떠했든 간에 한동안은 들여다보질 못했었다. 적당히 사랑했던 연애상대의 사진을 지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마음을 많이 주었던 상대방의 사진은 지우는 것은커녕 그를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방치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삭제 의식'을 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다짐했었다. 다음 연애 상대와는 '절대'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지 않으리라. 결혼이라도 하게 되거든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평생 한 사람과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도 괜찮으니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그전까진 헤어질 때마다 지우는 것도 일이니까. 이 다짐이 지켜진 적이 있었는가? 역시나 단 한 번도 없다. 매번 그렇게 사진, 영상을 찍어대고는 후회한다. 또 더욱 기가 막히는 건 오랜만에 접속했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갑자기 전연인의 사진이 화면에 떠올라 당혹했던 경험이다. 사진첩에서 '과거의 오늘'을 제 멋대로 화면에 띄워주는 일련의 서비스들에 심심한 원망의 말을 전한다.
포토북? 결혼 전엔 그 누구와도 만들지 말 것을 추천한다. 버리는 게 일이고 그 안에 세상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담겨있는 포토북을 버리는 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아무 고민 없이 화형식을 치를 수 있는 멘탈과 환경을 가진 이는 예외로 한다.)
사진첩에서 전연인의 사진만 골라서 삭제하는 것이 특별히 힘든 이들에게는 비용을 들여 새로운 폰을 구입하는 것을 강력추천한다. 가장 오래 지속된 3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어려웠던 나는 외국으로 도피하는 선택을 했었고,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현지에서 새로운 아이폰을 구입했던 것이다. 일상과 늘 함께하는 스마트폰 안에 비교적 최근인 과거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니 한동안 잊고 지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순간에 벽돌폰(?)이 되어버린 원래의 폰은 '한국폰'이라는 별칭을 얻어 집안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가 전연인을 거의 완전히 잊어갈 때쯤 '삭제 의식'을 위한 시간과 나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시간과 마음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모해야만 치를 수 있는 '삭제 의식'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자. 되도록이면 함께하는 사진보다는 연인에게 나를 위주로 한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연애 생활을 지속하고 연인과의 추억을 남기는데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면 말이다. 그 행복했던 순간의 나는 그대로 남으니까. 그 순간에 누가 함께했든 간에 맑게 웃고 있는 그때의 나는 거기에 있으니까.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워 다시는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나를 내던지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또 새로운 사랑을 하고 이별이 없을 것처럼 씩씩한 사랑을 해온 나는 이제는 지우지 않아도 될 사진들을 찍고,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의 순간들을 남기는 데 여전히 열심이다.
이천이십사년 사월 칠일, 세크라멘토에서 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