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연하 남친과 3년 연애의 마침표를 찍으니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3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때 그 사랑을 시작하던 내가 다짐했던 한 가지. '후회 안 할 자신 있거든 시작하자.' 연애를 시작할 때 그 사랑의 끝을 알고 시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따윈 없다. 영화 결말을 미리 알고 봐야만 한다면 보는 내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내 인생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살아가야만 한다면 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가혹한 벌도 따로 없을 거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문제지만 대가를 받고 미래를 대신 내다보아준다는 이에게 본인의 미래를 물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은 뭐가 됐건 믿을 구석 하나는 마련해 두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본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3년 연애의 믿을 구석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었을까. 연하남과 사귀다 결혼까지 가지도 못하고 쪽박 신세가 되는 연상녀의 에피소드, 인터넷상에서 한 번쯤 또는 주변에서 접해보았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하남과의 썸 또는 연애의 시작을 앞둔 이들에게 그러한 이유로 선 넘는 경고를 하는 일도 빈번하다. 나이만 먹고 홀로 남아 비혼을 외치게 될 수도 있다면서. 그동안 남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자유연애를 즐기며 내가 만난 상대들과의 럽스타그램을 인스타에 업로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어쩌고 저쩌고 이하생략. 남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그렇게 네 연애역사를 풀어놓는 것이 어쩌고 저쩌고
단지 그때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집중했을 뿐이다. 남이 보든 말든 크게 상관없었지만 내 주변 지인들에게는 근황과 소식 정도는 알리고 싶었다. 인스타를 모두가 하니까 또 그랬다. 30대가 되어서 결혼을 할 만한 상대가 나타나거든 해봐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결국 연애의 끝은 도망 다니는 나 자신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아닌 것이 확실하니까 도망을 쳐야만 했다. 그때마다 나를 쫓아오고 갈구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지만 눈에 가득 들어오고 성에 차는 것이 없었다.
다시 시작할 때의 다짐으로 돌아와 후회되냐고? 황금 같은 30대 초반의 시간을 그런 연애에 투자한 것 말이다. 헤어짐을 고하던 그 순간에도 생각하고 입으로 내뱉어 말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있어야만 했던 존재였고 시간들이었다고 자부한다 끝이 어찌 되었든 간에.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했던 그날밤을 떠올리면 그때의 공기와 빛감, 냄새까지 선명하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멀찍이 밀어내며 이별을 말하고도 서로를 각자의 삶에서 지워내고 멀어지지 못해 버둥거린 반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 멀어지려고 노력해도 마음에 그 사랑이 살아있어 밤마다 잠들지 못하게 하고 괴롭게 했다. 정말이지 괴로운 나날이었다.
내게 새로운 시작을 부추기는 몇 번의 끌어당김이 있었고 그들이 내게 반해오는 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짜릿했다. 그렇지만 나를 반하게 만든 이는 불행하게도 그때는 없었다. 이것저것 따져봐도 객관적으로 괜찮은 분들이었는데, 내 마음의 문제였다. 10년 만에 다시 사랑에 빠지게 해 줘서 고맙다며 꾸준히 직진으로 대시해 왔던 분의 마음이 부러웠을 지경이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건 정말 크나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준다는 건 신의 선물이다. 그 감격함에 빠져 매일 사랑에 허우적거리며 행복했다. 아니야 그별아 너 그거 눈먼 거야. 사랑에 눈이 멀고 이성이 마비되었으니 병이라고 해야 할까. 약간은 미쳐야 즐겁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정확히는 내가 현실을 자각하기 전까지 나는 행복했다.
도파민 중독자. 사랑 그 까짓게 뭐라고.
사랑 없이 존재하는 안온한 현실은 또 그 자체로 무감각이고 불행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순간들이 있지 않았는가.
눈먼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가슴 뜨겁고 소소한 행복들이 늘 곁에 있지 않았느냐고.
그럼 뭐 해 언젠가 이렇게 끝나는데
그래서 안 할 거야?
그럼 어차피 죽을 건데 뭐 하러 살아?
언젠가 어떻게 끝난다 한들
죽기 전까지
해야지.
사랑.
이천이십사 년 사 월 십일 새크라멘토에서, 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