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을지라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건만
나아갈 길은
이젠 얼마 남지 않았음을
더 깊이, 더 또렷하게 느낀다.
야속하게도
나는 갈 길 머잖았고
내가 없어도
세월은 마냥 흐르고 흘러
끊임없이 변화를 데려온다.
내가 멈춘다 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바람을 불러오고,
다시 또 하루를 시작하겠지.
없을지라도
내가 없을지라도
이 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일을 해내겠지.
그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편안하다.
나는 지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내가 남긴 흔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