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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남편

여름 나기

여름입니다. 너무 더워 에어컨 없이 지내기는 힘듭니다. 자연스럽게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일요일. 오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러다간 종일 둘이 붙어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이고야 함께 지내야 할 시간이 많은 나이 든 부부가 왜 그리 사사건건 투탁 거리는 지 이해가 됩니다. 한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건 두 사람이 단순히 1/2 씩의 물리적 공간을 점유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묘한 서로의 감정이 충돌하고 20년을 살아도 좁혀지지 않는 취향의 차이가 다툼을 일으킵니다. 특정 말이나 행동이 예기치 않게 상대를 자극해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옵니다. 딱히 같이 할 일도 없는데 서로의 존재가 의식되니 혼자 있을 때처럼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남편은 소파를 나는 식탁을 차지합니다. 남편은 티브이 리모컨을 나는 노트북 마우스를 쥐고 시간을 보냅니다. 당연히 티브이는 내 맘대로 보지 못합니다. 주말 티브이 채널 선택권은 암묵적으로 남편에게 양보합니다. 나에겐 꿀 같은 평일 낮 시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뭘 해도 혼자 있을 때처럼 편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나는 불리한 포지션입니다. 과일 좀. 커피 좀.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그동안 벌어다 준 돈으로 편히 살아온 것이 양심에 찔립니다.      


드디어 참기 힘든 성정을 주채 못한 내가 집 앞 카페로 나옵니다.

시원합니다. 에어컨 바람도 빵빵하고 거실과 주방의 거리보다도 가깝게 사람들이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합니다.       

이거 저거 끄적이다 기도문을 씁니다. 그런데  남편을 위한 기도가 길어집니다. 남편은 매 순간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애틋하고 특별한 존재는 더 이상 아닙니다. 하지만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남편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남편이 잘 살아줘야 내 남은 생이 평안하니 신께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어쩌나.       


여름아 어서 가거라. 평화로운 여름 나기를 위해 올 겨울엔 내 방에 꼭 벽걸이형 에어컨을 달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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