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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우리는 상처 앞에서 평등합니다.

결혼생활에서 부상은 불가피한 것

     

저녁 약속이 생겼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와 통화 중 잡은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자를 합니다.

‘나 00이랑 저녁 약속이 갑자기 잡혀 나가야 해. 저녁은 식탁에 차려 둘까?’

남편에게 답이 왔습니다. 

‘아니 그냥 냅둬’     

기분이 상합니다. 마누라 저녁 외출에 불만 있습니까? 기분 나쁘게 '냅둬'가 뭡니까? 서운한 마음이 발전해 화가 납니다. 


남편에게 정중하게 얘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표현 방식이 듣기 좋지 않으니 조금 신경 써 달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동안 남편의 무신경하고 배려심 없는 말투와 태도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냅니다. 화가 더 나고 침울해집니다. 나는 남편 때문에 상처 입은 가여운 아내가 되어 마지못해 외출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도 그렇게 즐겁지 않았습니다. 이후로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더 쌓아둡니다. 어느 날 정말 사소한 나중에는 이유도 잘 생각나지 않는 그런 일로 분노가 폭발합니다. 남편은 별 일도 아닌 것으로 화를 내는 나 때문에 화가 납니다. 결국 서로 화만 내다 끝이 납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내가 받았던 상처를 되갚아 주려고 한동안 말도 하지 않고 차갑고 냉정하게 남편을 대합니다. 남편은 이런 나로 인해 상처 받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상처와 부상은 불가피한 것 


20년 이상 우리 부부는 저런 똑같은 패턴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만 돌아봅니다. 이 끝없는 상처의 드라마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고.

남편은 말을 부드럽고 자상하게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닙니다. 말이 별로 없고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말투도 투박합니다. '냅둬'는 신경 쓰지 말고 볼 일 보라는 뜻입니다. 

고객이나 연장자를 만나는 등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상황이 아니라면 남편의 저런 반응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새로울 것도 없는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마 남편은 내가 상처 받고 기분 나쁜지도 몰랐을 겁니다.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는 상대의 말투와 표현 방식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입니다. 꼭 남편이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참 까다로운 사람 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그날 남편의 '냅둬'라는 그 한 마디에 상처 받았습니다.    

  

상처 받았다면 상처가 잘 아물도록 돌봐야 합니다. 몸에 난 상처 건 마음의 상처 건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잘 헤아려 주고, 다음에는 무방비 상태로 상처 받지 않도록 나를 잘 지켜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가장 먼저 상처 입은 이유가 정당 한지 아닌 지 머리로 따지지 것을 그만둬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각자의 독특한 사정과 이유로 상처 받습니다. 상처 받는 이유에 옳고 그르면 좋고 나쁨 따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상처 받았을 뿐입니다. 

해서 상처 입은 내 맘을 알아주고 위로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보다는 남편을 원망하고 과거에 받았던 상처까지 끄집어내서 소금을 뿌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다음에 상처 받고 싶지 않다면 내가 언제 상처 받는 지를 상대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상대방은 잘 모르니까요. 나는 내가 언제 쉽게 상처 받는지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나도 잘 모르는 걸 상대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가 상대에게 준 상처에는 둔감합니다. 내가 받는 상처의 내상이 너무 커서 상대방 것까지 헤아려 볼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요, 나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로 남편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해 봤더니 많이 미안합니다.  

   

결혼 생활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상처를 어떻게 돌보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쌓아 두면 이것이 나중에는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벽이 됩니다. 이 벽이 관계를 단절시키고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과 특별한 순간까지도 모두 묻어버립니다. 짧지 않은 결혼 생활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지고 있는 상처의 무게만큼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나를 돌아봐도 주변을 봐도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쉽게 상처 받습니다. 내가 이 남자 이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상처 앞에서는 모두 평등합니다. 각자의 상처를 잘 돌보고 내가 상대에게 준 상처를 좀 헤아려 볼 수 있다면 부부가 서로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드라마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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