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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나는 나, 남편은 남편

바꾸려 하지 않기, 그냥 인정하기

     

남편이 아파트가 아닌 산이 가까운 빌라로 이사 가고 싶어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주말이면 이사하고 싶은 동네로 탐방을 갑니다. 위치나 교통 건물 외관 등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부동산에 나온 집이 있다 검색을 합니다. 부동산에 나온 매물이 있으면 구글맵을 이용해 위성에 찍힌 그 집을 확인합니다. 그런 후 나에게 가서 실지로 그 집을 보고 오라고 합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낮에 보고 온 집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대답해 줄 수 없는 것들만 물어봅니다.     

“대지 지분은 얼마래?”

“단지로 들어가는 도로가 차 두 대가 동시에 다닐 수는 있어?”

“베란다 전망이 어느 방향으로 시야가 막혔지?”

“주차장 넓이는 어느 정도야?”

바보처럼 입 다물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인상을 씁니다.

“도대체 뭘 보고 온 거야?”

남편이 인상을 쓰니 나도 맘이 상해 짜증을 냅니다. 

“그럼 당신이 보러 다니던지 아니면 뭘 보고 와야 할지 메모를 해주던 지 해”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우리가 서로 너무 다름을.


나는 집을 보러 가면 일단 볕이 잘 드는 지만 확인하고 그다음에는 그 집에서 받은 느낌을 중시합니다. 집이 안정감이 느껴지는, 조용한지, 습하지는 않은 지 등등. 집을 사려면 나와 남편의 기준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으니 이럴 때는 서로의 차이점을 잘 조율하면 시너지 효과를 내서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결혼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달라서 싸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도 티격태격했습니다. 

     

남편은 운동을 좋아합니다. 특히 경쟁 상대가 있는 축구 탁구 검도 같은 종목을 즐겨합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기 어려우니 등산을 하거나 집 근처 천변을 조깅합니다.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고 아주 피곤하지 않는 한 집에 있기보다는 바깥 활동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면에 나는 산책 말고는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부부가 나이 들수록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어느 날은 남편을 따라 천변을 나갔습니다. 남편의 속도를 맞출 수도 없었거니와 밖에 나오면 하늘도 보고 주변도 살피면서 느긋함을 느껴야 만족감을 느끼는 나에게 죽어라 앞 만 보고 걷고 달리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햇볕 좋은 날 혼자 와야지 라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문제란 정보가 없어서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해결책은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세우기입니다. 나에게는 속상하고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평온하면 뭐든 잘하는 편입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커피 마시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문제를 다루는 내 방식입니다.      

딸아이가 학생 일 때 수업 마치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연락합니다. 알고 있는 친구라면 나는 오케이 합니다. 반면에 남편은 친구 전화번호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 주소 등 구체적인 정보를 받아 주지 않은 나를 질책합니다. 걱정을 하다 결국 딸아이 게 연락을 해서 알아보라고 합니다. 딸이 달갑게 전화를 받을 리가 없죠. 통화를 끝내고 남편은 원하는 것을 얻어 냈지만 나는 딸의 짜증을 받아 내느라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나는 남편 탓을 하고 우리 부부는 다툽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딸이 연락 없이 늦게 귀가합니다. 나는 딸이 들어오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모녀가 한 바탕 전쟁을 치릅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집에 들어왔으니 문제는 일단락된 것이고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차분하게 이야기하라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속상하고 걱정했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는 남편이 야속해서 남편에게 받은 상처 계좌에 저축을 합니다.      

 

나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편안한 사람입니다. 남편은 정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아무리 지적해도 남편은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가만 보니 그런 마음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물건이 제자리에 없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데 상대를 위해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에는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불편한 내가 정리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요즘은 군소리하지 않고 내가 보기 싫어 정리합니다. 고쳐지지도 않는 것에 에너지 쓰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수월하니까요.      



매사 이런 식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얼마 동안은 남편을 바꿔 보려고 싸우고 협박하고 하소연도 했습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나를 바꿔보려고도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남편을 바꾸려고 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코웃음이 났습니다. 


주변에서 보면 상대에게 잘 맞춰서 기분 좋게 사는 부부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건 둘 중에 한 명이 남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는 성격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대부분은 싸우거나 포기합니다.      

나는 포기라는 말보다는 그냥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한다는 표현이 부부 사이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것이지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니 누구를 고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형편없어 보이는 어떤 측면이 다른 누구에게는 꽤 괜찮아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나고 남편은 남편입니다. 드디어 우리 부부 사이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1화 우리는 상처 앞에서 평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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