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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이 짜증과 못마땅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휴일 점심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합니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일정 금액 이상이 되야 배달이 가능하기에 그냥 대충 주문을 합니다. 음식이 왔습니다. 남편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젓가락을 듭니다. 갑자기 온몸으로 짜증과 못마땅함이 확 올라옵니다. 먹고 싶지 않은 점심을 먹어야 해서 그랬을까요? 남편이 억지로 먹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먹거나 안 먹어도 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 짜증과 못마땅함의 정체는 뭘까요?    

    

결혼해서 살다 보면 가끔씩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짜증 화 못마땅함 등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남편이 함께 있으면 시비가 붙습니다.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볼멘 목소리로 볼륨 좀 줄이라고 합니다. 자고 있으면 일부러 시끄럽게 집안일을 합니다. 남편이 벗어 놓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집어던집니다. 식사 중이면 내가 만든 음식을 두고 타박을 합니다. 남편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도대체 이 짜증과 못마땅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에게 종속되는 모순의 삶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것은 제 경험에는 진실에 가깝지 않습니다. 물론 상대가 맘에 들어서이긴 하죠. 그것보다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봐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혼자 살아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다릅니다. 물론 행복에 필요한 공통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각자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들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혹은 경제적 안정감이 행복에 제일 조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타인의 인정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는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인정과 관심을 덜 받고 자랐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독점적인 가족을 만들어 남편의  인정과 관심을 받으려고 결혼했습니다. 혼자보다는 옆에 누군가 꼭 파트너가 있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욕구 충족이나 사랑을 주고받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통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제일 중요한 무엇, 가장 필요한 무엇, 그것을 얻으려고 결혼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결혼은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에게 의존하기’입니다. 나의 행복의 전제 조건이 상대에게 있습니다.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유지되고 모든 부분에서 상대를 배제하고서는 성립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종속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인간의 속성이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 나의 이런 알 수 없는 짜증은 남편의 잘못이 아닙니다. 남편이 못마땅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결혼 자체의 그런 모순적인 관계의 본질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더 행복해지려고 자발적으로 선택했지만 상대가 옆에 있건 없건 늘 누군가의 존재를 신경 써야 하는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 이것이 바로 알 수 없는 못마땅함의 정체 같습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화풀이를 해서는 안됨을 깨닫습니다.


      


                                                         도대체 결혼은 왜 했나요?     


자유로움을 포기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 행복해지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 그것을 나는 지금 가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결혼을 왜 했을까요?     


성인이 되고 학교까지 졸업하니 부모님과 따로 살고 싶어 졌습니다. 안락한 생활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조건이었지만 부모님이 꾸리신 가정이니 부모님 주도로 돌아가는 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그러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처지에 무조건 나가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벌어먹고 살고 싶은 만큼 독립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적당히 안락한 삶을 살면서 집에서 나올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땐 잘 몰랐지만 나는 삶에서 경제적인 안정감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결혼이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이 있었고 결혼에 필요한 비용은 양가의 부모님들이 전부 책임지셨습니다.    

  

나는 결혼으로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행복할 일만 남은 것 아닌가요? 아니요.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내 집이 생기고 남이 벌어다 주는 고정 수입이 생기고 남편과 딸이라는 가족이 생기고 나니 다른 것들을 가지고 싶어 집니다. 자아실현도 하고 싶고 남편한테 더 많은 관심과 인정도 받고 싶고 아이가 생기니 또 다른 뭔가가 필요하고. 결혼을 하면서 자진 반납했던 어디에도 매이지 않을 자유로움을 욕망하며 짜증내고 화내고. 

나는 세상 모두를 가지고 싶은 욕심쟁이 욕망 덩어리입니다.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하고 상처 입고 그러다 화해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온 모든 내 삶이 25년 결혼 생활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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