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슬픈 참 슬픈
Sad Story
소나기가 오면 몇 년 전 여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날 나만 엄마가 오지 않았어. 그 비를 맞고 혼자 집에 왔어....’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도 그날을 이야기하는 동생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초등학교 입학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비가 무섭게 쏟아지는 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자 8살 꼬마였던 동생은 무서워서, 엄마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엉엉 울며 혼자 집에 왔다고 한다.
평상시에 엄마에게 날 서게 반응하고 공격적인 말로 상처 주는 동생. 삼 남매의 가운데라 상대적으로 엄마의 관심을 덜 받고 자랐기에 섭섭한 일이 많아서 저러나 싶었다. 한 편으론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너무 지나치다고 나무라는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50 넘은 동생에게서 두려움과 서러움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있는 8살 꼬마의 모습을 봤던 그때. 나는 비로소 그녀를 이해했다.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엄마를 대하는 동생의 태도를 못마땅하게만 생각했던 나의 무심함이 미안했다.
가슴에서 8살 꼬마가 아직도 울고 있는 동생. 엄마를 미워하는 것 말고는 그 아픔을 해결할 방법이 달리 없었던 그 아이가 아직도 자신 좀 봐달라고 다 늙은 엄마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며 화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내게도 내 주변에도 그런 비슷한 일은 많았다.
반 전체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줬다고 생각했던 중학교 일 학년 담임 선생님, 졸업할 때까지 미워했다. 그 모욕감을 갚아주리라는 마음에 사사건건 반항하고 담당 과목이었던 과학 시간에는 유독 딴짓하고 일부러 시험을 망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내내 그 미움이 빼낼 수 없었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불편했다.
생활력 강하고 자식을 심하게 통제하는 억센 엄마가 싫어, 반대하는 상대와 더 따져 보지도 않고 결혼한 친구. 결혼 생활의 고비마다 너무 서둘러 결혼해 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 그런 선택을 하게 몰아간 엄마를 향한 미움과 원망,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이를 미워해서 생긴 죄책감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했다.
잘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기대치만큼 잘 나지 못했던 친구의 막내아들. 자신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심한 소외함과 열등감을 느꼈던 소년.
사고 치고 말썽 피우며 부모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되돌려 주고, 스스로를 존재 증명하려 했다. 그 가족이 서로에게 주고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나의 미워하는 마음에는 친절하게 나의 상처받은 마음에는 자상하게
스스로 쪼잔하고 졸렬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남들에게 받은 도움이나 사랑 관심은 쉽게 잊지만.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상처 입으면 꼭 상대에게 갚아주고 싶어 지니 말이다. 애초에 상처 입거나 화나고 억울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삶이 그리 아름답기만 할 순 없으니. 그 누구도 피할 순 없는 노릇.
인생이 상처받고 또 되돌려 상처 주면서 원수 갚고 복수하는 끝없는 네버 엔딩 스토리리라면 너무 슬퍼진다.
나는 왼쪽 볼을 때린 이에게 오른쪽 볼을 내줄 수 없는 미약한 인간이기에 타협책을 찾아본다.
누군가 미워지면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인정해 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 상처 입으면 그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의 소리를 자상하게 들어주고 그런 나를 내가 위로하고 편들어 주기. 이거라도 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