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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행복한 엄마

과거로 보내는 사랑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횡단보도에서 서너 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너무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아이 옆에 있는 엄마처럼 보이는 젊은 처자는 아주 단호합니다. 아무리 울어도 아이에게 뭔가를 해줄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어쩌나 자꾸 눈길이 갑니다. 주책스럽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지나가던 이 아줌마는 그칠 줄 모르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딸이 울고 있는 저 아이만 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젊은 엄마였을 때 나는 딸을 자주 울렸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흔쾌히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융통성은 없었습니다.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판단 분별이 심했습니다.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래의 가능성과 불확실성 사이에서 늘 전전긍긍했습니다. 아이를 단박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는데 그러 질 못했습니다. 아이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변화무쌍하고 힘이 넘치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생명체였던 딸아이. 그런 아이를 온전히 경험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복잡한 생각으로 에너지를 잔뜩 쓰고 나면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참 아쉽습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뛰어놀고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뿌듯하게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걸.'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나요.  다 지난 일인걸. 그래도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6살 때 강릉으로 세 식구가 1박 2일 짧은 휴가를 갔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날씨가 사나웠지만 아이는 들뜨고 신이 났습니다. 오렌지 색 수영복을 입고 밀려오는 바닷물에 작고 오동통한 발을 담그며  좋아했습니다. 난 우산을 받쳐 들고 발이 젖지 않게 하려고 모래사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피곤하지만 아이의 안전을 위해 마지못해 바닷물에 발을 적셨습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산 따윈 필요 없습니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돌고래 소리를 내며 아이랑 물장난을 치고 신나게 놀 겁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모래사장에 넘어질 때까지 뛰어다닐 겁니다. 아이를 안아주고 업어 줄 겁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봄날.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산이 다 보였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아파트 후문과 붙어 있어 역시나 산이 다 보였습니다. 산이 곱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단지 여기저기에도 꽃이 엄청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밖이 너무 예쁘다며 구경을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산책을 나갔습니다. 너무 예쁘다. 아이의 감탄사가 끝이 없습니다. 봄은 아름다웠고 아이는 신났지만 나는 정숙하고 얌전한 엄마였습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딸아이를 두 팔 벌려 안아주고 물개 박수를 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갑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남발하며 봄날의 찬란함을 아름다움을 찬탄합니다. 이를 다 드러내며 활짝 웃습니다. 딸아이를 꼭 안아 줍니다. 나는 행복한 엄마입니다. 아이랑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이 기쁨이고 축복입니다. 상상만으로 이렇게 잠시 행복합니다.

      


그때는 그걸 왜 몰랐을까요? 혹시 아이랑 신나게 노는 행복한 할머니라도 될 수 있을 까요? 엉뚱하고 웃긴 바람을 가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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