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Nov 01. 2020

상대의 절실함에 응답하기

  

언니 뭐해?      

아침 일찍 동생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이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동생이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건 뭔가 심사가 편치 않다는 걸 뜻합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명랑하고 말을 재밌게 잘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합니다. 반면에 난 조용하게 혼자 지내는 편입니다. 나는 동생한테 좀 쌀쌀맞고 재미없는 언니입니다. 언니랑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며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동생의 기대에 부응해 준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동생이 오죽 답답하면 내게 연락을 했을까요? 나는 아마 동생의 마지막 선택지였을 겁니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날도 좋은 데 산책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했습니다. 입맛이 없다고 해서 몸 생각해서 끼니는 거리지 말고 배달 음식이라고 시켜 먹으라고 했습니다. 핑퐁처럼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동생이 내게 어떤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냥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난 동생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부드럽게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조금은 이기적이었고 분주한 아침이었습니다.     


하다만 집안일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며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맞았습니다. 하늘까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습니다. 소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동생이 떠오릅니다. 그저 잠시 시간을 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을 것입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같이 마시기 바랬을 지도 모릅니다. 그도 아니면 그냥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생을 위해 얼마간의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고 귀를 기울여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하지만 내 생각 내 감정 온통 나에 대한 것들로 가득한 내 마음. 상대를 위해 텅 빈 내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딸아이가 연락도 없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도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섭고 걱정이 돼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영영 딸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딸이 위험에 처해 있는 데 지금 그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라면? 두려움과 막막함이 나를 압도했습니다. 누구라도 내 옆에 있었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부처님 예수님 마리아 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딸이 어서 돌아오길 기도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 덕이었을까? 딸은 별일 없이 집에 들어왔습닌다. 하지만 마음 깊이 새겨진 그 날의 상처는 아물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몇 년 전, 해외여행 중 일정상 일행과 떨어져 혼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환승지인 방콕 공항에 착륙할 즘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착륙은 지연되고 비행기는 요동치며 방콕 상공을 계속 빙빙 돌았습니다. 온몸이 굳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또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 옆 좌석의 중국인 아줌마가 내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5시간 넘는 비행시간 동안  눈도 한 번 마주치지 않았던 그녀가 나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내 손을 잡아주고 간간이 등을 쓰다듬고 토닥여 줬습니다.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다행히 다음 비행기는 고요히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생면부지의 그 중국인 여성은 내가 쉽 없이 불렀던 여러 신들이 내게 보내준 응답인 듯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었나요? 낳아 키워주신 부모님, 돈을 벌고 가정을 지켜주는 남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딸, 피를 나눈 형제자매, 소중한 친구들,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부름을 대신한 듯 누군가의 절실한 바람에 응답한 적이 있었나요?       


당신 지금 많이 속상하군요. 저도 속상하답니다.     

당신 지금 많이 슬프군요. 저도 많이 슬픕니다.      

당신 지금 너무 기쁘군요. 저도 기쁩니다.      

당신 지금 너무 행복하군요. 저도 행복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적인 있었나요?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날도 좋은데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습니다. 동생 댁까지 불러 내 오랜만에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환해진 동생의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상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6화 Gratitud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