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온다. 영란과 박 여사가 카페에 마주 앉았다.
“오랜만이다.”
박 여사가 먼저 입을 뗐다
“그러게.‘
영란은 짧게 대답했다.
모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영란은 카페 라테 박 여사는 유자차. 모녀는 말없이 컵만 입에 가져갔다.
”어떻게 된 일이야? “
영란이 먼저 물었다.
”문 여사 알지? 손녀딸이 그 학교 다녀. 애 엄마는 직장 때문에 문 여사가 대신해줬거든. 그거 녹색 어머니. 근데 문 여사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허리 다쳐서 꼼짝을 못 한다고 해서 대신 간 거야. 아이고 그런데 그 꼬마가 엄마 기다리면서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짠해서 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어. 그러는 넌? 오늘 출근 안 했어? “
”병원 가느라 월차 냈어. “
”왜 어디 아파? “
박 여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냥 좀 피곤해서. 별거 아냐. 갱년기라 그럴 수 있대. 갑상선 검사했어. “
”결과는? “
”며칠 걸리지. 애 엄마는 병원에서 만났어. 아픈 애 둘을 데리고 어찌나 쩔쩔매던지. 안쓰러워서. 갑자기 비까지 내려서 집까지 태워주려고 했더니 애가 또 있다잖아. 우산 가져다줘야 하는데 어쩌냐고 막 울었어. 그래서 학교까지 같이 간 거야. “
”잘했네! 잘했어. 말이 쉬워 셋이지 애 셋 키우는 게 좀 힘들겠어? “
”그러게 난 시어머니가 키워주셨어도 힘들었는데. “
그러고 영란이 잠시 말을 멈췄다.
”엄마도 우리 셋 혼자 키웠잖아. “
”그때야 다 그랬지. 뭐…. “
또다시 엄마와 딸 서로 말이 없다.
”근데 영란아 내가 참 미안하다. “
”뭐가? “
”너 초등학교 때 비 엄청나게 오는 데, 내가 데리러 안 간 거. 비 맞으며 혼자 걸어오다 무서워서 울고 오줌도 싸고 그랬다고 했잖아. 지금까지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네가 자꾸 그 이야기하면 뭐 좋은 일이라고 그만 좀 잊고 살지 그러나 싶었어. 세월도 많이 흘렀고. 그런데 오늘 그 꼬마 보니 딱 네가 생각나서. “
박 여사가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동안 애 키우느라 나 힘들었다는 생각만 했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네가 엄마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까 이제야 내 심정 헤아리니 미안하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 “
영란도 코끝이 빨개졌다.
”그만해. “
”아냐 엄마가 너무 미안해 “
”엄마 나도 미안해. “
”네가 뭐가 미안해? “
”오늘 그 애 엄마 보면서 우리 박 여사 생각 많이 했네. 엄마가 나 키울 때도 저랬겠구나! 혼자서 애 셋을 키우느라 참 힘들었겠구나. 어쩌면 엄마도 그날 언니나 막내가 아파서 나를 데리러 못 왔을 수도 있었겠구나.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겠구나. 못 오는 엄마는 또 얼마나 속이 상하고 괴로웠을까 싶었어. 그런데 그동안 나는 엄마한테 상처 주는 말만 많이 한 거 같고.
그냥 그런 맘이 들더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잘해준 건 기억 못 하고 아직도 맨날 섭섭한 것만 끄집어내 늙은 엄마 속상하게 하고. 미안해. “
박 여사와 영란은 서로 마주 보고 훌쩍거렸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쑥스러워 비 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 오랜만에 같이 저녁이나 먹고 들어갈까? “
”나야 좋지 근데 김 서방은? “
”알아서 해결하라 하면 돼. 그러는 엄마는 아버지 저녁은 어떡해? “
”요즘 네 아빠도 나 없으면 알아서 잘 챙겨 먹어. “
”잘됐네. 그런 언니도 오라 할까? “
”그래, 어서 전화해 봐. 네 언니도 지난주 절에서 잠깐 본 게 다야. “
”알았어. 근데 엄마 뭐 먹을까? “
”요 근처에 생선구이 잘하는 집 있는데 거기 갈래? “
” 좋아. 엄마 잠깐만. 언니랑 통화 좀. 언니 나 엄마랑 있는데 같이 저녁 먹자고. 올 수 있지? “
영란 씨의 목소리가 명랑하다. 박 여사의 얼굴도 활짝 폈다. 드디어 비가 그쳤다.
삶에서 겪게 되는 모든 사건은 서로 상호 작용하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의 총합니다. 누구에게나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할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니 더는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지 마세요. 그저 나를 돌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신이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