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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ug 14. 2021

[개샛길] 내; 동사

개-샛길 프로젝트 아홉 번째, 소정 이야기

이 글은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개-샛길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압박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샛길로 빠져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까지 주위 사람 100명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글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극적 장면임을, 삶이 풍랑 같다고 느끼는 이에겐 결국 삶이란 조각들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걸 전달해 따스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표현으로 글이 누군갈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제 주위가 되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내; 동사


내;맡기다. 내;버리다. 내;뱉다. 무심히 서술어를 배치한 이는 깜짝 놀라고 만다. 동사가 숨겨놓은 예상치 못한 역동성에. 소정은 가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더욱 예상치 못한 선택을 내리고 그 길로 나가곤 했다. 그를 보고 있자면 엉뚱하다는 말로는 모자란 어떤 집요함, 도전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그를 대학 학보사에서 만났다. 당시 우린 '주격 조사를 뭘로 할 것인가'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꽤나 진지하던 대화를 사소했다 평하긴 싫지만 목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목소리 높였던 모두를 생각하면 이유모를 웃음이 난다. 혈기와 열정으로 다물지 못한 입술들 사이에서 간혹 날카로운 혀가 통제 불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실력이 없으면 모욕을 당하는 게 당연했던 곳에서 모두는 사랑하는 이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가만히 있는 것조차 버티는 게 되던 곳에서 난 버틴다 생각했는데 그는 이기고 있다 여겼다. 모욕에 대한 저항으로 목소리 높이는 걸 택한 난 그도 원한다 생각하고,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모욕을 견디는 게 아니라 이기고 지는 문제를 씨름하고 있었으므로 포로가 아니라 원형경기장 안에 선 투사였다. 그러므로 소정은 내가 간신히 버텼다 여긴 순간마다 늘 이겨내고 있었다. 


여전히 그때의 액자로 지금의 그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던 순간으로, 그가 자신이 꿈꾸는 공동체는 이러하다고 용감히 내뱉었던 때로. 누군갈 평평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게 위험할 수 있으나 나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선 모두 주변인일 수밖에 없다. 그의 선택은 예상과 달랐고 그가 극적 순간으로 내게 닿았다.


이후 각자 본가에 머물며 종종 만나 맛집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대화에 치열함이 사라지고 취향이 자리했다. 그와의 시간엔 늘 '책과 영화 소개받기' 코너가 있었다. 그의 견해 잔뜩 묻어난 열성적인 추천사를 들으며 난 온도가 같아짐을 느꼈다. 휴학한 뒤 간혹 해야 할 일을 미뤄두었을 때 으레 찾아오는 우울이 나에게도 찾아왔는데, 가끔 지나쳐 시시때때로 날 차갑게 얼리기도 했다. 


그가 툭툭 내뱉었던 농담, 위로, 열성적인 추천사가 내 차가웠던 시절을 따스하게 데워 줬다.  그가 사준 시집, 글귀마냥. 


시간의 엇갈림

(맑음에 대하여, 강준서)

우리의 시간은 같은 필요가 없을 뿐더러
같은 일은 드물다
동시에 기쁜 것과 함께 슬픈 것은
두터운 사이를 만드는 행운이다

어느 날은 내가 추락한 시간과
당신이 날아오르는 시간이 같다

시간의 엇갈림은 감정의 격차를 보호한다
너무나 많이 무너져버리지 않게
날아오르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는 행위는
추락의 시간을 지탱한다

그렇게 우리의 엇갈림을 이용한다



실력이 없으면 모욕을 당하는 사회는 자꾸만 지경을 넓여간다. 실력이 없어서 모욕을 당하는지, 모욕을 당해서 실력이 없다 평가받는 건지 이젠 헷갈릴 정도인 이곳에서 나는 감히 그가 여전하길 바란다. 경기장에 선 투사의 승리를 기도하며, 그를 바라본다. 사랑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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