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샛길 프로젝트 여덟 번째, 현지 이야기
이 글은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개-샛길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압박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샛길로 빠져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까지 주위 사람 100명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글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극적 장면임을, 삶이 풍랑 같다고 느끼는 이에겐 결국 삶이란 조각들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걸 전달해 따스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표현으로 글이 누군갈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제 주위가 되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느낀다. 울컥 대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 마음은 날 향한 것이기에 더욱더 날카롭다. 비난에 핑계를 대줄, 쓰라린 마음을 달래줄 이도 없기 때문이다. 여태껏 체력도 길러 놓지 않고 무얼 했느냐는 물음에 오로지 나만이 답해줄 수 있을 터인데 난 ‘그러게’란 답밖에 꺼낼 게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짬을 가질 차면 천장 위 물음들이 이미 어두워진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아, 살 것 같다. 순간 그런 소리를 낸 나에게 놀란다. 비로소 내가 살아났다면 오늘을 산 그는 누군가. 이 순간에야 내가 살아있게 된다면 오 분 남짓의 짧은 휴식을 위해 그 긴 시간을 견뎌낸 것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수영장 트랙에 홀로 떠 있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수영장, 아침인지 밤인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불투명하게 덮어놓은 창 앞에 수영을 시작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는 내가 있다.
물 위였다. 물 아래였다. 숨을 참는다. 숨을 뱉는다. 수면 위로 있는 고개를 힘껏 치켜드는 것은 결국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 위함이라는, 당연한 공식이 힘에 부칠 때 이 트랙의 끝을 상기한다. 이 끝에 무언가 있긴 하겠지. 이토록 막연한 가정에 온몸을 내맡긴 채 흘러가다니, 생각보다 삶은 별것 없다. 어쩌면 우리네 믿음이 보잘것없단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 바쁘게 일상을 해치우는 지도.
고른 숨 한 번 내뱉기 힘겨운 자는 누군갈 상처 주지 않기도 쉽지 않다. 폭력엔 면죄부가 없다고 아주 쉽게도 말했던 입술로 칼날 같은 미움을 사방에 건넨다. 그런 날이면 샤워기 아래에서 아주 오랜 시간 내 안의 무언가 씻기길 기다린다. 날 곱씹어보는 행위는 반성도 다짐도 아닌 칼날을 무디게 만들어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한강 작가 책을 보며 허벅지 안쪽 살 같은 그 누구도 상처 주지 않는 자가 되겠다던 나를, 철없다 평가하게 되는 내가 어색하다.
스물다섯 살 봄은 바다에 가기가 왠지 어렵다. 술에 취하는 날이면 늘 가던 바다가 멀리 느껴지는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내 주위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꾸역꾸역 담아낸 온갖 감정의 쓰레기통을 들출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일까. 덜 즉각적이고, 덜 감정적인 내가 어색하다. 무언가 덜어냈는데 떨친 조각을 찾으러 바닥을 살펴보아도 무엇을, 어디에 버렸는지 찾기 힘들다.
덜 뜨거워진 마음으로 많은 글을 적어낸다. 무슨 희극의 reflection paper니 주일 예배의 기도문이니 맡은 배역의 전사니, 방송 비평문이니 하는 글들을. 담았다 생각했는데 텅 빈 글들을. 평가받기 위해 탄생한 글은 주인이 없다. 평가자의 소유는 당연히 아니지만, 온전한 내 것도 아니다. 주인 없는 글들이 바탕화면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게 아닌데. 온전한 내 글을 쓰고 싶단 마음이 차오른다.
우울의 서사를 써 내려가면 또 잠깐 고개 들 수도 있을 듯하다. 물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이제는 덜 두렵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다. 밑바닥으로 떨어지면 끝없는 추락이 아닌,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수영장 타일이 있다. 바닥을 박차고 또다시 팔과 다리를 있는 힘껏 흔들어 댈 예정이다. 온갖 데에 물을 튀기며, 여기 이곳에, 수많은 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외친다. 그걸 위해 기꺼이 침몰한다.
넌 무얼 하느냐는 물음에 오로지 나만 답해줄 수 있을 터이다. 나만이 답장할 수 있는 편지를 써서 건넨다.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길 바라며, 쓰는 것만으로 해소가 되길 바라며. 삶에 대한 변명을 적어 나의 봄에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