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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Sep 27. 2021

[독후감] 음복_강화길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_대상(문학동네)

쓰고 싶은 말이 많아 첫 문장을 쓰기까지 미적거렸다. 얼마 전까지 요즘 우리네 담론이 작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외부의 적(일본이든, 가난이든 무엇이든 자신 밖의 것)과의 치열한 전투는 사라지고, 점점 자신 내면의 적(우울감이든, 게으름이든)에 몰두해간다고. 사회가 예민해지고 사소해졌다고. 사회가 사소해지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예민해지고 사소해지다 보니, 피곤해졌다. 처음에는 내 안의 뜨거운 울컥거림이 차갑에 식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열정이 부족해서 혹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어서. 그런데 차갑게 식은 게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였다. 불판 위 삼겹살 기름처럼, 기름구멍으로 흘러가지 못한 채 하얗게 고체가 되어버린 돼지기름, 그게 내 분노였다.


분노에서 비롯된 예민함과 사소함은 공유되고 토로함으로써, 계속해 뜨겁게 흘러갈 수 있다. <음복>의 장르는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다. 작가는 이 문학작품의 장르만으로도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예전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봤을 때,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장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충격을 다가왔었다(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옷깃만 스친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을 옮겨 기술하며 결국 모두의 마음에 흉터처럼 남겨진 한 사건, 광주 민주 항쟁의 참혹함을 비췄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음복>의 장르를 '스릴러'로 설정함으로써 거대한 권력의 소용돌이를 살고 있는 여성을 주목하고 있다. 악역과, 비밀스런 뒷 공작과, 세기의 로맨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있는 스릴러. 심지어 이 스릴러는 대물림된다. 이 스릴러의 기원을 찾으려면 거슬러 올라가도 한참 올라가야 할 지경이다.


소설 속에는 베트남 전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거대한 외부의 적과 치열한 전투를 했던 그. 할아버지 옆에 오랫동안 있던 할머니는 벌컥 화를 낸다. 기원을 모르는 자에게 화는 벌컥 튀어나온 과격함이고 밥상을 싸늘하게 만드는 예의없음이다. 할머니의 전투는 계속되지만, 할머니에게 토마토 고기찜을 차주는 사람은 없다. 아니, 할머니의 화가 오랜 전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일부에게만 알려진 사실이다. 세상의 절반이지만 여전히 일부인 이들만이 분노의 기원을 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거야."


38쪽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그런데 말이야 - 과연 그걸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43쪽(오은교 평론가)
그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서사가 아니라 여성들도 싫어하는 여성의 욕망을 탐구하는 일에 자신의 커리어를 바쳐왔다. 이 짧고 강렬한 소설에서 그가 탐구하는 여성들은 바로 '가부장제 부역자'로 불리는 가족 내 여성 구성원들이다. 패악질을 일삼는 정신 나간 시어머니, 가족 행사에 혼자만 쏙 빠진 시사촌, 그리고 남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구습 재생산에 가담하는 젊은 새댁인 화자 '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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