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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Nov 21. 2022

언어를 잃어가는 나날

#일상

언어를 잃어가는 나날


요즘 난 언어를 잃어간다. 나에게서 분노의 언어를 앗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편도 한 시간 반의 통근 시간일까, 뭘 해도 부족해보이는 신입의 정신 없음일까, 무엇으로 먹고 살지의 고민이 끝나서 일까. 


어느 날 문득 내가 거세당한 채 묶여 있는 것 같았다.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버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다 흘러 가버리고 낯선, 처음 보는 내가 발견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어도 답할 힘이 없는 그런 사람이.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요즘. 아침의 나는 일어나서 빨간색 경기도 직행버스에 몸을 실어 넣고 잠을 청하는 에너지 밖에 없고, 저녁의 나는 최대한 빨리 침대에 눕는 것을 목표로 내 안의 힘을 사용했다. 그 사이 사이의 일상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흘러가는 대로 일상을 놓아버린 것이 지금의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내가 힘없이 놓아버린 것들에서 나는 통제권을 잃어버렸고, 그것들이 나를 처음보는 곳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놓아버린 것들에 이름 붙일 권리를 잃어버렸다.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언어를 놓아버릴 수 있는지, 그토록 소중하게 움켜쥐었던 손아귀 힘을 아주 쉽사리 풀어버릴 수 있었는지, 회칠한 무덤 같은, 덮어놓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말하는 삶 같은 것을 자진해서 초청할 수 있었는지. 날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지. 참 의아하고 화가 난다. 


잃어버렸던 분노가, 다시 생겨난다. 분노가 나에게 언어와 방향을 찾아와 줄 것 같아 반가웠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지만 큰 용기와 선택 앞에 있는 기분이다.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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