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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Feb 04. 2023

오해의 시작

aka 텃새



트램도 다니지 않는 새벽 5시.

캄캄한 어둠을 뚫고 큰길로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시급 19불에 비하면 택시비 10불쯤은 낼만한 가치 있는 소비였다.


마침내 도착한 로이스 호텔.

나를 RMIT 대학교까지 인도해 줄 레드카펫 같은 꿈의 직장. 반드시 이곳에서 올해 말까지는 일을 하며 학비 만불을 모아야 한다.






아침잠이 유독 많아서 학교 다닐 때에도 늘 지각을 밥 먹듯이 했던 나였다. 그런데 새벽 4시 알람에 눈이 한 번에 떠졌다. 새벽 4시. 염원이 가득한 시간이라 보통 목사, 신도, 귀신이 제일 많이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자본주의 현실과 목표가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힘이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었던 난 강제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블랙퍼스트 타임에서 함께 일하게 된 김자까자까 입니다"


호텔 레스토랑 조식 스탭은 나포함 6명이었다.

레스토랑 슈퍼바이저 말레이시안 여자 '말리나' 32살, 키 154cm, 통통한 체형, 눈이 크고 단발머리였다. 로이스 호텔 근무 경력 1.7년.

한국인 여자 '킴' 26살, 키 167cm, 건강한 체형, 올빽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에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로이스 호텔 근무 경력 1.2년.

한국인 여자 '다이엔' 24살, 키 163cm, 마른 체형, 작고 가느다란 눈, 여드름 피부, 로이스 호텔 근무 경력 10개월 차.

조식 주방장 일본인 게이 할배 '준' 키 167cm, 보통 체격, M자 탈모와 일본인 특유의 영어 발음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곳에서 근무를 했다고 들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 호주인 '마이클'  키 170cm, 보통 체형, 전형적인 호주인 인상이었다.

그리고 나 '김자까자까' 27살, 키 162cm, 마른 체형, 호텔 경력 겨우 1일 차.


이렇게 6명이 함께 아침에 일 할 팀이었다.

면접을 보았던 브라이언은 호텔 레스토랑 지배인인데 아침 9시에 출근을 했다.


"Hello, princess"


호텔에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부터 브라이언은 나에게 '프린세스'라고 불렀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서 그렇게 불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아빠한테도 듣지 못했던 '공주' 소리를 알바하는 호텔 레스토랑 지배인에게 듣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영어 빼고는 일을 빨리 배웠다. 일을 시작하기 전날 호텔 레스토랑에 들러 양해를 구하고 메뉴판 하나를 빌렸다. 그리곤 메뉴를 달달 외워서 갔다. 레스토랑 안에서 쓸 단어들과 용어들을 미리 공부해 두었다.


출근 전날 와서 메뉴판을 빌려간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브라이언은 나에게 쌍따봉을 날려 주었다. 수다쟁이 브라이언은 이런 나의 희한한 행동을 호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소재로 이야기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열심히 일하는 새로운 한국인'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다.


런치나 디너 스텝, 그리고 정직원을 제외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은 주로 편한 복장으로 다녔다. 새벽 5시 30분부터 일이 시작되다 보니 말리나, 킴, 다이엔 역시 편한 복장에 쌩얼로 출근했다. 유니폼을 입은 채 출근과 퇴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한국물'이 덜 빠진 걸까? 철저히 TPO를 맞추는 성격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집 앞 슈퍼를 나가도 항상 화장을 하고 옷을 챙겨 입는 그런 종족(?)이었다. 아마도 전직 패션 스타일리스트여서 일할때 습관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화장을 하고 머리는 고데기를 하고 옷은 최대한 스타일리시하게 입고 출근했다. 옷과 화장으로 무장하면 이상하게도 나는 갑옷을 입은 것처럼 든든했다.


나의 최대 약점은 영어였기 때문에 영어 빼고는 모든 면에서 프로의 모습으로 비치고 싶었다.

이런 내가 신선했는지 런치 스텝들과 호텔 식구들은 호감의 표현을 거침없이 드러내었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 주었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농담을 던지고, 페이스북 아이디를 교환하며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Hello, fat"


이 소리는 브라이언이 출근하면서 킴에게 인사를 하는 소리이다. 말리나에겐 "Ugly" 다이엔에게 "다이엔" 나에겐 "Princess"라고 인사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아침 인사가 매일 이어졌다.


일을 시작한 지 이 주일쯤 되었을 때부터 말리나는 사카스틱 랭귀지(sarcastic language)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사카스틱 랭귀지는 빈정거리고나 비꼬는 표현이다.

"와우~ 우리 레스토랑 공주님 오셨네?"

말리나가 나에게 친히 인사를 하면 옆에 있는 킴과 다이엔은 키득 거렸다.


이것이 시작이었을까?

"헤이, 김자까자까, 아니, 그 테이블 아니고 저 테이블이라니깐?"

"아니, 아니, 지금 그런 뜻이 아니잖아. 공주라서 이런 일 안 해 본거지?"

"아 됐어, 넌 그냥 창고 가서 잼이랑 소스 재고 정리나 해"


말리나는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은근히 돌려 까기로 나를 맥였고, 자주 창고로 보냈다.

비좁고 먼지 나는 창고에 쪼그려 않아 미니 잼들과 소스들의 숫자를 세어가며 재고 조사를 해야 했다.

'흥, 이까짓껄로 내가 기가 죽을 것 같아?'

창고로 강제 이송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조금씩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말리나 보다 거기에 동조하는 킴과 다이엔에게 더 큰 서운함이 느껴졌다.

같은 한국인인데 어떻게 이래?

킴은 완벽히 말리나의 편에서 나를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고, 다이엔은 그나마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오해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리나에게 다시 물었고, 그때마다 말리나는 나의 면전에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저들과 친해져 보려 노력도 많이 했지만 그들은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함께 일 하지만 유리벽이 쳐진 느낌이었다.


문득 한인 잡지 <멜버른의 하늘>에서 본 문구가 생각이 났다.



한국인 조심하세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겁니다.




말리나와 그들에게 1달 넘게 이유 모를 핀잔과 미움을 받았다.

아.. 이게 텃새구나..

혹독한 외국 생활 신고식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꼭 그렇게 해야 속이 시원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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