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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Feb 11. 2023

왕따의 시작

네 꿈을 응원해




너 미쳤어? 나 스튜어디스야!


이런 걸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스튜어디스 혜정아
다 알면서 하는 거, 다치라고 하는 거,
네가 매일매일 나한테 한 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8화 문동은과 최혜정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8화에서 문동은이 최혜정에게 하는 대사이다. 

참한 여자로 결혼을 하려는 혜정에게 동은은 뜨거운 장작을 들고 내밀었다. 자신은 스튜어디스여서 얼굴에 흉이 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는 박연진의 패거리와 동은의 온몸을 뜨거운 고데기로 지지고 영혼마저 파괴시켰다. 문동은의 오랜 꿈인 박연진 그리고 그들을 향한 복수.


문득 로이스 호텔 '킴'이 떠올랐다. 드라마에서처럼 지독하게 몸과 영혼이 파괴될 만큼 괴롭힘과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그녀가 기억되었다. 같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앞장서서 나를 왕따 시켰던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했던 킴. '더 글로리'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떠올랐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

나는 왕따가 되었다. 


슈퍼바이저 말리나가 나의 왕따 시초를 책임졌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킴이 앞장서서 나를 왕따 시켰다. 처음엔 중립을 지키던 다이엔마저 두 언니의 기세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다이엔이 완전히 저들 편에 서게 된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레스토랑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면 빈 접시를 치워서 설거지 통으로 가져와 치운다. 포크 나이프를 하얀색 플라스틱 통에, 접시는 음식물을 버리고 포개어서 둔다. 마침 나는 나이프 통 옆을 지나가던 참이었고 다이엔은 나이프를 통에 던져 넣었다. 그때 안에 들어있던 구정물이 내 눈과 얼굴에 심하게 튀었다. 


"아이 C"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때 다이엔은 정색하며

"뭐라고요? C8? 지금 저한데 욕하신 거예요?"


"아니 그냥 아이 C라고 했는데?"

"지금 C8이라고 욕 하셨잖아요"


억지를 쓰는 다이엔이었다. 8자는 붙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것이 다이엔에겐 일종의 명분이었던 셈이었나 보다. 중립 기어를 박고 있던 그녀가 드디어 오피셜 하게 킴과 그들의 편에서 나를 대놓고 왕따 시킬 명분.


본인의 귀는 절대 의심하지 않고 내가 본인에게 욕을 했다며 일장 연설을 하더니 결국 어이없는 발언까지 했다. 

"언니는 호텔에 놀러 오시는 거예요? 일하러 오시는 거예요? 일하러 왔으면 제대로 좀 하세요!"

"내가 뭘 하면서 놀았다는 건데? 지금 일하고 있잖아"


참으로 황당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설거지하는 마이클도 함께 있었지만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니 증인이 되진 못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걸까? 목청 높여 헛소리를 정성껏 해대더니 "똑바로 하세요" 앙칼지게 경고하듯 말하고는 레스토랑으로 휙 하고 가버렸다. 그리곤 프론트에서 셋은 신나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다이엔은 은따 취급하던 나를 오피셜 하게 왕따 취급하기 시작했다. 


호텔의 모든 식구들과 친했지만 킴, 다이엔, 말리나, 준 이 네 사람만이 유일하게 주도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준, 알라카 메뉴 오더 있어요. 에그베네딕트 하나입니다. 준? 준!?"


내 목소리엔 절대 한 번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서너 번은 불러야 고개를 겨우 까닥하거나, 쳐다보지 않고 대답만 성의 없이 한다. 주문이 여러 개 겹칠 때에는 신경질을 크게 낸다. 메뉴가 나오면 어느 테이블 음식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신경질 적으로 음식을 탁 놓고는 주방으로 휙 가버린다. 그럴 때면 꼭 주방에서 킴과 쑥덕거리며 키득대곤 했다. 그러면 킴은 준에게 라떼를 건넸고, 준은 킴에게 먹음직스러운 팬케이크를 건넸다. 환장의 한일전 콜라보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덕분에 나의 기억력과 집중력은 향상되었다. 알라카 메뉴 주문이 많은 날엔 꼼꼼히 기억하고 순서를 메모해 두었다. 


일하면서 참 치사하다고 느낀 일은 음식이었다. 

가끔 준은 조식 레스토랑 스텝들에게 알라카 메뉴를 만들어 주곤 했다.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하다 보니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았기에 호텔에 와서 시리얼을 먹거나 빵으로 아침을 때우곤 했다. 그럴 때면 준은 아주 가끔 에그베네딕트나 오믈렛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내가 창고에서 잼과 소스 등 재고 정리를 할 때 만이었다. 참으로 더럽고 치사했다.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거 가지고 이러는 건 너무 대놓고 왕따 하는 것이 티가 났다.


어느 날 프론트에 있는데 다이엔이 물었다.

"언니는 여기서 왜 일하시는 거예요?"

"왜냐니? 너랑 같아. 돈 벌려고 일하지."

"돈 벌어서 뭐 하시게요?"

"대학교 갈려고"

"어디요?"

"RMIT"


순간 다이엔, 킴, 말리나는 셋이 서로 마주 보며 콧웃음을 쳤다.

그리고 다이엔은 말했다. 

"여기서 대학 가기 힘들걸요? 특히.... 아.. 아니에요" 

그녀는 말끝을 흘렸고 킴이 토스받듯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언니는 영어도 못하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일 한다고 학비 모으는 거? 쉽지 않을 거예요. 하우스 키핑 자리 하나 났던데 거기 지원해 보는 건 어때요? 시급도 더 세고 일하는 시간도 길어서 언니 같은 사람이 일하기 딱 좋을 거예요. 언니를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사람이 뭔데?"

"몰라서 묻는 거예요? 언니 영어도 못하고 일하는 센스도 없잖아요. 레스토랑보다는 몸 쓰는 청소일이 더 잘 맞을 수 있어요. 청소는 영어 많이 안 써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말리나 와 다이엔이 옆에서 입술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셋은 나를 보며 눈으로 비웃었고 내 마음을 할퀴었다. 이런 게 모멸감이라는 건가? 난생처음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웬일로 말을 걸기에 나는 조금은 나와 친해지려 마음의 문을 여는 건가 싶었는데. 결국 이러려고 말을 건 거였다. 영어? 나보다 몇 년 더 일찍 호주 와서 배워 나보다는 조금 더 잘하는 거?  나보다 잘하는 건 맞지만 결코 킴과 다이엔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 실력은 아니었다. 


그날 밤 나는 공부 플랜을 짰다.

듣기, 말하기, 쓰기, 문법, 단어 외우기 5가지 섹션으로 나누고 매일 공부할 양을 정했다.

나는 무조건 RMIT를 간다. 보란 듯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너네들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조금 울컥했지만 울음을 삼켰다.


킴은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했다.

다이엔은 호주 영주권을 따고 싶어 했다.

말리나는 영주권을 따고 호텔 정직원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 너희들의 꿈을 응원한다. 

나는 무조건 잘 될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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