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까자까 May 01. 2023

내가 쓴 브런치 글 누가 읽을까?

나에게 글쓰기란?


안녕하세요. 김자까자까 입니다.

1년 반의 프리랜서 생활을 접고 저는 다시 월급의 노예로 돌아갔습니다.  그동안 회사 생활에 적응을 하느라 브런치 글쓰기에 잠시 소홀했네요. ㅜㅜ


3월 27일을 마지막으로 약 1달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어요. 출퇴근 시간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긴 했지만 역시나 글쓰기는 근력과도 같아서 한 번 쉬어 버리니 다시 루틴 잡는 게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기존 에세이로 돌아가기 전 오늘은 글쓰기 근력도 키울 겸 "내가 쓴 브런치 글 누가 읽을까?"를 생각하다 나온 다소 두서없는 글로 근육을 살포시 붙여보려 합니다. 하하.





내가 쓴 브런치 글 누가 읽을까?


브런치 작가 합격에 기쁜 마음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나니 궁금해졌다. 내가 쓴 브런치글을 과연 누가 읽을까?

어떻게 노출이 되는 걸까?


브런치를 시작한 지 막 한 달이 되었을 때, 나의 글이 레코멘데이션에 노출되었다. 하루 뷰가 50명도 채 안되었는데 그날 아침은 달랐다. 알람이 수도 없이 울렸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3,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가 8,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는 결국 10,000 뷰를 넘기고야 말았다.

이럴 수가..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고?글쓰기 재능이??


다음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 그것도 여행 카테고리에 24시간 동안. 때아닌 관심에 얼떨떨하면서도 브런치 새싹 작가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보내주는 응원이라 생각했다.


3달 동안 19개의 에세이를 작성했고, 그중 다음 포털의 메인에 노출되며 만뷰를 찍은 글은 두 개가 되었다. 구독자도 늘고 너무 기뻤다. 이렇게 가다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혼자 김칫국을 통째로 드링킹 마셨다.




 처음 만뷰를 찍은 에세이




▼ 두 번째 만뷰를 찍은 에세이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땐 막연히 호주 유학생활 7년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 시작했다. 26살에 시작한 워킹 홀리데이에서 유학생으로 바뀐 후 7년간의 유학생활 끝에 마침내 나는 외국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ABCD만 알던 영어 무식자도 충분히 영어를 배우고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나는 해 냈고, 나처럼 돈 없고 고민만 많은 늦깎이 유학생들에게 나의 경험을 토대로 용기를 주고 싶었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너도 가능하다고.

늦지 않았다고.

그러니 시작하라고.

어서 떠나라고.


그렇게 시작된  브런치였다. 나름 타임라인을 기획해 두었다. 초반 3개월은 워킹 홀리데이 2년간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영어 프로그램 코스와 고 3 과정인 파운데이션 과정. 마침내 RMIT 대학교 정규 과정과 졸업. 7년간의 짠내 나는 유학 스토리 라인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때의 기억들이 살아났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그날의 냄새, 함께 했던 일상, 하루에 4계절이 담긴 멜버른의 변덕스러운 날씨까지도 모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지? 누가 본다고?


생각해 보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다.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 때 그림일기는 전부 잃어버렸지만 중학교 때부터 작성했던 일기장과 다이어리, 받은 편지들을 전부 보관하고 있다. 물론 다이어리는 12개월을 꽉꽉 채운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매년 기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잘한 행동인 것 같다. 기억은 휘발되어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그때 쓴 글을 읽어 보면 그때 그 시절로 타임슬립해서 간 듯 그때의 기억이 모조리 난다.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남자애에 대한 오글거리는 이야기, 사소한 이유로 베프와 다툰 이야기, 서울에 있는 친언니와 펜팔을 했던 내용 등.  하지만 대부분의 일기 내용은 힘들 때 작성한 것이었다. 서럽고 힘들어서, 지금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 아무도 해결책을 주지 않아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린 마음에 나는 나의 마음을 일기장에 토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비관적인 글을 쓰고 있노라면 그렇게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일 수가 없었다.


모든 기억과 눈물과 생각나는 모든 것을 꼭꼭 눌러 담아 나는 일기장에 기록했다. 이따금씩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억지로 글 위에 떨어뜨려 글씨가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쩌다 호주 유학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사는 게 바빠 일기를 쓰지 않았다. 재작년 회사에서 심한 가스라이팅을 겪고 난 후 억울한 마음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를 팰 수 없으니 억울했던 감정을 키보드로 미친 듯이 두들겨 팼고, 한번 쓴 글을 절대 읽지 않았다.


글은 나에게 훌륭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주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나는 키보드에 열심히 두드렸다. 그렇게 쓰다 쓰다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때 나는 내가 쓴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참 많이도 억울했었나 보다. 그리고 바보 같았다.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글로는 잘 써지는 마음이 왜 말로는 안되었던 걸까? 처음부터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나의 결정에 나는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스라이팅, 심리, 소통 관련 책을 사서 읽었고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그저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였다는 것을.


의문이 해결된 이후에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치유'였다. 상처받은 감정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나는 글을 썼던 것이었다.


또한 글을 쓰면 나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드려다 볼 수 있었다. 한 없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기록했던 일기와 메모, 그리고 조각조각 이루어진 아이디어는 블로그에 기록되었고, 브런치까지 오게 되었다.


누가 나의 브런치 글을 읽는지, 어떻게 메인에 노출이 되고, 레코멘데이션에 노출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브런치 통계를 보아도 자세히는 나와 있지 않으니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할 수밖에.


두어 번 만뷰를 찍어보니 살짝 욕심도 생기고 부담감도 생겼었는데, 한 달 쉬어서 그런지 이제는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다. 마음 한편엔 여전히 다음 메인 노출을 꿈꾸며 오늘도 끄적여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