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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11. 2022

귀국. 내가 이혼해 주면 돼?



"엄마... 나 못하겠어. 집에 갈래."


평생 당차고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나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4년간 줄곧 타지 생활을 해왔던 나이지만 이 정도로 힘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왕 간 거니 조금 더 있어보라고 했던 엄마도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아셨는지 정 힘이 들면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랬다. 나는 그 정도로 절박했고 그 상황에서 하루빨리 나를 꺼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내가 그곳에서 버틴다고 더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미 미국 인턴행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남은 하나. 배우자를 택한 결정이라도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다. 그가 그런 실수를 했지만 그가 보여줬던 긍정적인 마인드, 행동력,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나에 대한 응원과 지지. 사랑. 그 부분들은 아직 변하지 않고 남아 있지 않은가. 가서 어떻게든 그 빚 상환에 대한 계획을 함께 세우고 이 관계는 이어나가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자니 나를 채용해준 미국 회사에도 너무 죄송했다. 나를 데려오기 위해서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신경을 쓰고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주거, 차량 많은 부분 편의를 봐준 것도 사실이다. 국내 취업과는 다르게 해외취업의 경우 구직자도 그렇지만 기업 또한 비자 준비 등의 사유로 손이 많이 간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입사한 지 1개월이 채 안 되었었다. 준비 기간만 해도 2달이 넘게 걸렸는데 말이다. 나를 믿고 뽑아주신 인사팀 팀장님께 그리고 같은 부서 부장님께도 너무 죄송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주신 사수님께도 죄송한 건 매 한 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었다. 그곳에서 하루하루 좀비처럼 살아가는 생활을 1년간 지속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만둘 것이라면, 하루빨리 그만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힌 후 PCR 검사, 은행계좌 해지, 항공권 예매 등의 귀국 준비를 시작해 나갔다. 그런데 이 별거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일 하나하나를 처리하는데 불안이 시시각각으로 밀려들었다.  '혹시 PCR 검사가 늦게 나오면 어떡하지? 보통 24시간 내에 나온댔지만 보장할 수 없다 하고 그다음 날은 공휴일인데? 음성이 아니라 양성이 뜬다면? 공항에서 환승시간 안에 통신사 해지를 해야 하는데 안된다면?' 등등.. 오만가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좀처럼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출국하기  매사에 확신에 가득 차 거침없이 일을 처리해 나가던 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태생낙관적지만 제는 모든 것이 불안하여 항공권 티켓 구매 같은 작은 결정 하나도 직접 내리기가 힘들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히 정해져 있었음에도 일이 잘못될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좀처럼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행동 하나하나에 엄청난 저항을 느끼며 꾸역꾸역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갔고 그 결과 나는 간신히 한국에 돌아왔다. 출국 때와는 다르게 공항에는 엄마가 나와 계셨다. 엄마로부터 "잘 돌아왔다"을 듣 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실이 옅게 실감났다. 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보다 다음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일이든 빚이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지. 엄마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소득이 없는 무직자 신분이 되었고 투기로 빚을 진 남편을 둔 아내가 되어있었다. 일단 무엇을 먼저 해결하든 나에게 소득이 필요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취업준비를 한다는 것은 즉 회사에 나를 어필한다는 것인데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취업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선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귀국 바로 다음 주에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이후를 계획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약속한 날짜가 되고 나와 그는 한 달 남짓이 되는 기간만에 만나게 되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과 한 달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와 만난 직후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고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소득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극도로 불안해했고 먼저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둘 다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지원서를 넣을 직장의 위치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부모님의 집과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대중교통 기준 편도 5시간 정도인 거리였고 둘 중 한 곳에서 직장을 잡고 근무를 해야 할 터였다. 나는 지역 관계없이 지원을 해보고 붙는 곳에 가겠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오길 바랬다. 둘은 붙어있을 때 한 번도 마찰이 없었는데 장거리를 하고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귀국한 이유 중의 하나도 우리 둘의 관계를 살리기 위함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의견을 듣고 맞는 말인 것 같다고 일단 수긍하였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직장을 구한 후 그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일단 옮긴 후 구직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려가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왜 또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냐" 성을 내며 짐을 싸서 집으로 내려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벙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이러려고 먼 거리 달려온 게 아니지 않냐" 그를 진정시키며 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그 이후의 얘기는 내일 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그날은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이제 진정하고 빚 청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정확한 액수나 이자, 매달 상환금액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자꾸 물음에 회피하는 그를 붙잡고 정확히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 계획을 세우든 할 것 아니냐 일단 금액부터라도 말해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은 부채금액은 '1억'이었다. 나중에 사회생활 2-30년 차 지인분께 상담을 하던 중 "그 정도 금액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심한 사람도 많다."라는 반응을 들었었다. 하지만 나와 그 사람의 나이. 20대 중후반에 1억이라는 빚은 나에게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고 도저히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내가.. 치기에 내린 섣부른 판단으로 앞으로 3년 이상의 시간을 빚 상환에만 쓰게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암담했다. 더군다나 나는 실직자 상태였다.


굳어진 내 표정을 본 그는 다시 한번 성을 냈다. 표정 보라고. 내가 이럴 줄 알고 말을 안 하려고 한 거라고. 그러고는 집에 가겠다고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표정이 굳은 것도 이유를 설명해야 하나. 어이가 없었다 이번엔 잡지 않았다. 그에 태도에 다시 한번 실망을 하며 둘은 말없이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갔다.


개찰구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자책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 그때. 섣불리 혼인신고만 안 했어도 이런 일은 없는 건데. 이별을 고한 사람을 붙잡지 않았으면 되었던 건데...' 그 한순간의 선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끝내고 싶었다. 돌이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없었다. 더군다나 내 옆에 이 사람은 이 상황에 대화는커녕 또 집에 돌아가겠다고 걸어가고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그 사람이 보여준 갈등 해결 방식도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을까.

인근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개찰구가 거의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그 사람이 획 돌며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아 내가 이혼해 주면 돼?"





...?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었다.

다시는 헤어진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한 혼인 신고였다. 내가 실망을 했으면 했지 그의 입을 통해서 이혼 얘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그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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