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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19. 2022

그래. 하자, 이혼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다시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헤어지자는 얘기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기에 그 말을 믿고 한 혼인 신고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다시 이별을 입에 담고야 말았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었고 솔직히 말해 기분이 정말 X 같았다. 누구는 그 생각을 안 해서 말을 안 한 줄 아나? 되돌리고 싶은 심정은 내가 수백 배 앞설 텐데. 니가 왜? 분에 못 이겨 씩씩대는 그의 손목을 잡고 인근 계단으로 이끌었다. 대화가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일단 내가 빚 얘기를 듣고 얼굴을 굳힌 그 순간부터 설명이 필요한 것이었을까?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얘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이러이러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집에 가겠다는 너에게 실망을 했고 잡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역까지 아무 말도 없이 이동하던 중 너는 다시 이별을 입에 담았다. 혼인신고하게 되었을 때 기억하냐. 너는 다시는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겠다 약속했고 나는 그 말을 믿고 너랑 혼인신고를 한 거다. 근데 너는 또...


감정이 북받쳤다. 하지만 더는 싫었다. 한번 그런 사람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 약속해서 그를 믿었으나 보란 듯이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제 더는 그를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어서 말했다.


이혼하자고 이별을 입에 담지 않았냐. 이제 내가 뭘 보고 너를 믿냐. 또 다음에 이런 의견 차이가 생기면 언제든 이혼하자 할 것만 같고 나는 이상태로 너랑 함께할 수 없다. "그래 우리 이혼하자. 나 이혼하고 싶어. 그렇게 하자."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숨이 턱턱 막히지만 이렇게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 선에서 정리하자. 그렇게 하자. 아직 가족도 친구들도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래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정리하자.


그렇게 결국 내 입에서도 끝내자는 말이 나왔다. 그랬더니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이혼하기 싫다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정말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겠냐고 공공장소에서 울며 불며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겠다 매달리는 그를 놓고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무 자르듯 단칼에 돌아설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몇 달간 정말 온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차마 매몰차게 돌아설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으며 조금 더 얘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결국.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으로 얘기가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 그를 내려 보냈다.



돌이켜보면 그때 더 단호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지 못하였고 그 대가로 이미 바닥 줄로 알았던 상태에서  깊은 우울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한 때 평생을 함께하고자 했던 사람이 끊을 수 없는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옥죄고 상처주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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