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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01. 2022

내가 무너져 내린 이유 (3)

니가 잘했어야지




"사실 나... 빚을 졌어."



"... 뭐?"



그렇다. 내가 그날 그를 통해 들은 고백은 그가 빚을 내서 코인 투자를 해 그 돈을 전부 날렸다는 것.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지만 언뜻 듣자 하니 연봉액의 몇 배는 되는 돈을 날린 것으로 보였다.





솔직히 말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고 무덤덤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들이 이미 너무 힘들어서인지  바다 건너 전화를 통해 전해져 오는 소식에 당장 크게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그런 투자를 하게 되었냐고 물어봤고 대충의 정황을 들었다. 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연락이 와서 본인의 코인 계좌를 보여주며 어떤 종목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는지 자랑했다고.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듣고 혹해서 영끌을 해 코인에 투자를 했고 인버스인지 × 2인지 하는 옵션이 붙어있어 일정 금액 이하가 되면 잔액이 조금도 남지 않고 0이 되는 시스템이었단다.


...



이미 벌어진 일. 그 사람을 책망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이미 자기가 본업 이외의 시간에도 노가다를 뛰고 그 돈을 이용해서 돈을 갚아 나갈 계획까지 다 세워놓았다고 자기가 다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역시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하지만 나한테 한 마디 상의 없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에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결혼식은 안 했어도 법적으로 부부 아니었냐고. 어떻게 나에게 한마디 없이 그런 짓을 벌인 건지 솔직히 너무 실망스럽다고 그에게 여과 없이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며 돈을 다 갚기만 하면 그 이후에 통장 카드 공인인증서 모두 나에게 주고 자기는 손도 대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그렇게 그의 충격적인(?) 고백과 대략적인 정황설명을 들은 나는 일단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가 중요하다는 식의 교과서적인 말들늘어놓은  전화를 끊었다.



'후...'



 전화를 끊은 나는 멍하니 방안의 흰 벽을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혼자 방 안에 앉아 웃었다. 사람이 정말 황당한 일을 겪으면 진짜로 웃음이 나는구나. 이 상황에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이 웃겼다. 그렇게 한동안 미친 사람 마냥 혼자서 웃었다.





물론, 의외로 덤덤하고 차분했던 내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마음속에 견디기 힘든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가뜩이나 환경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랑 그 사람,  지금 법적으로도 묶여있는데,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내 명의로도 돈을 빌릴 수 있는 거 아니야?', '이 빚에 대한 상환의무는 같이 지게 되는 건가?' 등의 현실적인 불안들. 하지만 정작 나를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한 것은 불안이 아니었다. 그를 향한 원망도 아니었다. 화살이 향해 있는 곳은 그쪽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누가 봐도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던 것은 바로 나. 내 자신이었다. 





그때. 혼인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 '헤어질까'라는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린 바로 그때. 그때 조를 지키고 엉겁결에 혼인신고를 하지 말았어야지. 장거리 연애도 안 해본 채로 배우자를 결정을 할 게 아니라 귀국 후로 혼인신고를 뒤로 미뤘어야지. 미국 인턴? 네가 실행에 옮기기 앞서서 미리 잘 알아봤어야지. 한국어로만 진행되었던 면접에서 근무환경이 이럴 거라는 것을 눈치를 챘었어야지. 니가...니가 잘했었어야지...!



그렇. 나는 내가 내린 두 가지 결정에 대한 후회와 자책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한 가지는 면밀한 조사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행을 결정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코인 투자를 해서 돈을 날릴 정도로 경솔한 사람을 내 배우자선택한 것이었다. 두 가지 결정 모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내 나름대로의 단 하에 스스로 내린 결정들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이 동시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고 나는... 고장 난 나침반 마냥  이상 내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당한 느낌이랄까. '그럼 앞으로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해 나가면 좋은 거지?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 말대로 따라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닌데...?'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결정들을 되돌리고 싶었다. 자존심이건 체면이건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대로 또 다른 결정을 직접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웠다. 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제 막 미국에 건너와 새로운 일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누가 봐도 여기서 그만 두기에는 너무 일렀다. 아가더라도 '이런 근성 없는 나를 어떤 회사에서 채용해 줄까?' 하는 불안감에 일단 더 버텨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상태로 정상적인 업무가 진행될 턱이 없었 업무 간 잦은 실수티미하게 남아있던 자존감을 더욱 깎아내렸다. 내가 있는 것보단 없는 게 이 회사에게도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와중에 여전히 근무환경은 국에 있는 여느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고통을 감수하고 여기서 얻어갈 것이 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느껴졌다. 엇보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못했기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은 일상과 함께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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