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너져 내린 이유(2)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한마디로 정리해서 미국에서 맞닥뜨린 환경은 내가 생각했던 환경과 너무도 달랐다. '뭐로가도 미국이니까. 영어는 당연히 따라오는 거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의 95퍼센트 이상은 한국말을 사용하는 한국과 다름없는 환경에 놓여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탰을까? 아니. 정말로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라던지 은행업무를 볼 때 빼고는 한국말만 사용하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도 그만두고 함께 미래를 약속한 배우자도 내버려 둔 채 오로지 내 성장만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확신도 그런 확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휘어지지 않고 부러졌다.
내가 인턴으로 간 회사는 미국에 있는 한인기업으로 사장님께선 한국분이셨고 과장 부장급의 관리자들은 다 한국 사람인 기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께 주로 일을 배우고 업무를 함께 하게 되어있었다. 물론 현지에서 채용된 미국인 직원도 있지만 나와는 업무상의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할 때까지. 내가 뱉은 영어문장은 "굿 모닝" 이 전부인 날도 있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세 명의 룸메이트들과 함께하는 출퇴근길에는 익숙한 한국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아이유의 스트로베리문, 소코도모의 회전목마. 그중에는 내가 몰랐던 좋은 노래들이 꽤 있어서 그것들을 발굴하는 재미가 쏠쏠하긴 했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선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오만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생활한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인턴 동료들의 영어실력을 봤을 때 '저게 내 미래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그들 정도의 영어는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 내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거주 한지 10년이 다되어가는 회사 선배들을 바라봤을 때에도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롤 모델로 삼을만한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내 곁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는 자신에게 큰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만큼 잘하지도 못하는 주제 이상은 높아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고 그런 내가 너무 빤히 보여서 싫었다.
밤낮으로 걸려오는 그 사람의 전화는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이 또한 내가 한국에 있다고 느끼는데 일조하였는데 시차에도 불구하고 교대근무였던 그는 내가 자기 전, 그리고 일어난 직후에 전화해 끊임없이 안부를 물어왔다. 정말로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렸고 때로는 심한 스트레스에 두통이 오고 구역질이 났다. 그렇다고 그에게 연락 빈도를 줄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뜩이나 그는 내가 퇴근 후에 직원들과 어울린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매우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한국에서 거의 매일같이 만날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내 상황을 아는 그는 그럼 거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냐고 당장 돌아오라고 나를 재촉하였다. 딱히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하고 버텨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아서 더욱 힘들었다.
위에 언급한 점들 이외에도 회사 밖을 벗어나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어도 차가 없어 이동에 제약이 있는 점, (내가 있던 곳은 큰 도시가 아니라 대중교통이 없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내가 삼시세끼 끼니를 걱정하고 챙겨 먹어야 했던 점, 밤새 방안의 화재경보기가 울려대어 숙면에 지장이 있었던 점, 갑자기 핸드폰 스피커가 고장이 났던 점 등, 사소한 스트레스들이 한 겹 두 겹 쌓이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대로 업무에 지장을 주었다. 업무 간 잦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게 되었고 그 일들은 또다시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여러 가지 요인들을 쭉 늘어놨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 간 근본적인 목표인 '영어실력의 향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환경이었다. 그것만 보장되었다면 나머지는 약간의 불편함으로 느껴지고 그렇게까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심신적으로 쇠약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너가 더 잘 알아봤어야지.', '한국어로만 진행되었던 면접에서 눈치챘어야지.'등 돌이킬 수 없는 결정에 대한 후회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챙겨 먹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는 것을 핑계로 시리얼과 베이글을 전전했다. 룸메이트들이 종종 요리한 음식을 나눠줘서 매우 고마웠지만 동시에 미안함과 무력감을 느꼈다. 뭐든 스스로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내 성격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나를 끊임없이 책망하고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의 무력감과 자괴감에 점점 지쳐가고 있을 무렵 언제나 그렇듯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 아침이었다. 주말이 와서 기쁘지만 어딘가 갇혀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상태에서 딱히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 뭐했냐, 지금 뭐 하고 있냐, 오늘 뭐 할 거냐'와 같은...
그렇게 큰 기복 없는 대화가 이어지던 중 문득 그가 말했다.
"사실... 나 고백할 게 있어."
"응? 뭔데?"
"그게... 아... 진짜 안 되는데"
운을 뗀 그는 자꾸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나에게 별다른 충격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짧은 내 인생 속 최대치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었고 이미 나는 충분히 힘들었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무념무상의 상태. 하지만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 더 컸기에 재차 물었다.
"야 우리 사이에 숨길게 어딨다고. 나한테 말하려고 말 꺼낸 거 아니었어? 평생 말 안 할 것도 아니잖아. 뭔데 그래?"
"응... 그게... 사실 나..."
정확히 어떤 말로 그가 그 고백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이상 미국에 있을 수가 없어서 머지않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게 아니었어도 1년을 다 못 채우고 돌아왔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의 존재와 그 고백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한 달을 채 못 채우고 귀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