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아이 Jul 31. 2022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게 타오른다

출국 직전까지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


이제 우리에게는 기껏해야 한 달 남짓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었다. 법적 관계에 어떤 변동사항이 있었든 간에 우리 사이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 보였다. 아, 하지만 내 내면적으로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원하는 곳으로의 이직, 원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짧은 시일 내에 쟁취한 나는 폭주 기관차 마냥 말과 행동에 거침없어졌고 그 정도가 가족 및 지인들이 좀 이상하다고 눈치를 챌 정도였다.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는 사실은 왜인지 모르게 나를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게 했다. 특히나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낼 때에는 이 경향이 극에 달했다. 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식으로 얘길 꺼내곤 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리액션이나 반응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사실 난 이미 결혼했는데. 이 사람들은 내가 결혼한 줄 꿈에도 모르겠지?'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던 듯 하다. 괜스레 주변 사람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데이트를 하고 짧은 여행을 다녔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이렇게까지 잘 맞는 사람이 있구 싶었다. 대체로 즉흥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동시에 또 그렇기에 짜릿함을 느꼈다. 그 사람도 나도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콜을 외치며 직진하는 성격이었고 내가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혹은 그가 낼 경우에도) 서로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우리가 좋았다.

여행 중에는 크고 작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 또한 마음에 들었다. 간단한 예로 가기로 했던 가게의 문이 닫혀있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기보단 대안을 바로바로 찾고 다른 안을 제시하는 그가 듬직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 사람이랑 이라면 인생에 크고 작은 어려움 이 닥쳤을 때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둘만의 데이트도 맘껏 즐겼지만  중간중간 만날 수 있는 지인들과 친구들은  다 만나고 다니며 그렇게 한 달이라는 간이 행복하고도 알차게 흘러갔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꿈같은 시기.  반짝반짝 빛나던 나의 황금기. 나의 끈덕진 영업의 성과였을까? 결국 나의 부모님도 출국 전 그 사람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한줄평은 "어디서 본 듯 한 얼굴이고 착해 보이네."였다.




예정된 출국날짜가 되었다. 부모님은 일을 가셨어야 했기에 부모님을 대신하여 그가 공항으로 배웅을 나와 주었다.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하여 공항에서의 첫 데이트를 즐기다가 출국 수순을 밟고 그의 손을 잡은 채로 의자에 앉아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들었다.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져 국제선 탑승게이트 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와 꼭 끌어안으며 일 년 후를 기약하였다. 책맞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쓰며 탑승권이 끼워진 여권을 손에 든 채 보안 검색대 쪽으로 향했다.




 바이러스의 영향인지 면세점 안은 매우 한산하였다. 면세점 특유의 탁 트인 느낌이 좋아 심호흡을 두어 번 쉬었다. '이제 또 시작이구나.'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오롯이 혼자가 된  나는, 새로운 도전에의 설레는 마음을 안고 탑승권에 쓰여진 게이트로 걸음을 내디뎠다.



다음 글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