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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Jul 23. 2022

정신 차리니 니는 유부녀가 되어 있었다 (2)

어차피 한 달 후에 할 거라면,
그때 하나 지금 하나 다를 게 없지 않아?

이전과 같은 논리였다. 미국에 다녀와서 하나 가기 전에 하나 차이가 없지 않냐는 말에 나는 수긍했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다시금 저렇게 물어 왔다.


그랬다. 어차피 한 달 안에 무슨 수를 써서든 부모님을 설득 것이었고, 최악의 경우 설득이  되더라도 혼인신고는 하고 갈 생각이었다. 그제까지 살아오며 진학이든 취업이든 인생의 굵직한 결정들은 스스로 내려온 나였다. 부모님께 의견을 여쭙되 결국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좋은가 보지.'라는 생각은 일종의 면죄부마냥 모든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켰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그럼 부모님들을 설득하자는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건지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질문들은 뒤로 한 채 또다시 나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런 것 같네"라고 대답한 후 둘 만의 혼인신고 날짜를 잡고야 말았다. 어차피 하게 될 거. 부모님을 설득하고 신고하나, 신고하고 설득하나 같지 않느냐고 이전과 같이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시켰다. 바보처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 혼인신고 절차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당사자 두 명이 함께 출석할 경우 증인 두 명의 간단한 신상정보와 서명 외에는 따로 필요한 것이 없었다. 증인란에는 그 사람 친구들의 이름을 적기로 했다. 타지 생활을 했기에 내 친구 중에는 아직 이 사람과 직접  만나 본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뜬끔없이 혼인신고 얘기를 했을 때 미쳤단 소리를 안 들으면 다행이지 선뜻 증인이 되어 줄 친구는 없다고 생각한 게 그 이유였다. 반 그의 주변에는 증인이 되어줄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같이 시청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미리 번호주소, 사인만 받아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이틀 전날이 되었다. 귀기 시작한 이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있었지만 그날 밤은 따로 떨어져 있었고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출국 전까지 부모님께 설명드리고 설득하고 하려 했었는데 갑자기 얘기가 왜 이렇게 된 건가 싶었다. 여전히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내일 그를 보러 가서 다시 날짜를 조금 더 늦추자고 말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다음 날이 밝았고 나는 그를 만나 '내일 당장 혼인신고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몇 주만이라도 좋으니 조금 더 뒤로 미루자'라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처음으로 언쟁 엇비슷한 것을 하였다. 그는 '원래 내일 하기로 했던 건데 왜 말을 바꾸냐'고 말하였고 나는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늦추는 게 뭐가 문제냐. 또 원래 하려던 게 다음 달 말이지 않았냐.'고 반박하였다.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논쟁에 우리는 약간 언성을 높였다가 때로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는 것을 반복하였다. 처음 얘기를 꺼낸 카페를 나와서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이동할 때까지 그렇게 고 도는 진전 없는 대화이어갔다. 나도 그 사람도 굽힐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고 어느덧 도착한 방안에는 어색한 공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얘기를 통해 그를 설득할 의지도 에너지도 바닥이 나 체념 상태에 이르렀을 때 즈음 그가 먼저 적막을 깨고 입을 떼었다.



"우리... 그만할까?"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순식간에 내 머릿속은 새 하얘졌고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았어도 확신을 가지고 함께 미래를 그려가자던 관계였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었다. 부모님께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떵떵 거리며 말했던 내 모습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급하게 타오른 불 급하게 꺼진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내 남은 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끝난다고?


정말 얼척이 없었고 황당했고 말 그대로 진짜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의 옆에 가만히 앉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머릿속에 장작불에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이 떠올랐다. 위험할 정도로 뜨겁게 타오른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만 재를 남기며 그라드불꽃이.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혼인신고를 좀 늦추자고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어떤 말로 설명을 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이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동시에 머릿속 한켠에서는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한 번 이별을 입 밖으로 커플은 다시 붙을 수 없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던 나였다. 신조에 따르면 우린 다시 잘 될 수 없다.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사람이랑 이렇게 끝이 난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으나 어느덧 나는 울면서 혼인신고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내 감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이러이유 때문에 그런 건데 근데 너는 그 상황에서 그만두자고 말을 했다. 나는 너랑 평생을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로 그만두자는 말을 들을 줄 몰랐고 너무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그만두자고 한 사람 안 붙잡고 한번 끝을 입밖에 낸 커플은 다시 잘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너가 그랬고 나는... 

나는 너랑 헤어지기 싫은데 우린 이제 끝난 거냐며 그렇게 몰아치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나는 아이처럼 울어버렸고 그는 반자동적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 않을 테니 믿어달라고. 자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겠냐고.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이 너무 좋은데 나는 정말 끝을 입밖에 낸 관계는 이어 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고로 내 마음속에선 이미 이별을 한번 상태였고 그래서 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짝과 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그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한다. 정말로 내가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그는 다시는 헤어짐을 입밖에 내지 않는 걸까? 내가 그의 말을 믿어기만 한다면 우리는 계속 갈 수 있는 걸까? 아직 내 몸은 그에게 안겨있는 상태였다. 나는 아직도 그가 좋았다.






결국 나는 다시는 헤어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어주기로 하고 예정된 대로 그다음 날 시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하였다. 절차는 인터넷 상으로 알아본 대로 매우 간단했고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청 밖을 나서면서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고 실제로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 보였다.



'혼인신고 뭐 별거 아니네.'




그렇게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그와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고야 말았다.


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별거 아니었던 행동 하나로 수백 번 수천번을 그 순간으로 돌아가 끝도 없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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