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매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했을터인데 이에 더해 '내가 곧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백을했다.'라는 사실이 그 사람을 몇 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장애물 앞에서 주춤하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해 줬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고 오히려 그 무모함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나를 놓지 않아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중에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서이와같은 그의 도전적인 성향이 그가살아온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과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돈을 벌어본 경험,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본 경험, 해외에 파견을 나가 근무를 해본 경험 등,그 나이에 남들은 가지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해온 것을 알 수 있었고자신의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회사를 다니며 회사 규모에 불문하고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음에도 무언가를새로 시도하기보단 체념한 듯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었는데 개인적으로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시도하고 보는 그의 성향이 마음에 들었고 소위 말하는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사에 낙관적이고 행동력이 강한 그와 함께라면 남은 여생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조금 안되었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 내 이야기를 하며 '너무 좋은데 확 혼인신고 해버릴까?'라는 말을 해버렸다는 얘기를 꺼냈다. 나는 물론 그말을 농담처럼 가볍게 받아들였다. '아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 그 와중에 부모님 반응이 궁금하기는 해서어떻게 반응하셨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막 웃으시더니 '그렇게 좋으냐? 그러면 그렇게 하던가'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말이라도 훈계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일단 듣고 봐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유튜브 채널도 가족이 다 함께 출연하는 채널이라고 했었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가상화폐 관련 어플도 그 사람의 영업결과(?) 가족 다 같이 깔아서 조금씩 모아가고 있다고 했다.가족들이 이 사람이 낸 아이디어나 의견에 함께 움직이는 게 좋아 보였고 덕분에 이렇게 자신감 있고 행동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며칠 후 그 사람의 부모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원래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들이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니 오죽 궁금하셨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분들을 한번 뵙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이 사람과의 먼 미래까지도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 이 사람은 어떤 부모님 밑에서, 어떤 가정환경에서 커왔을지 궁금했다.
약속한 식사 날이 되었다. 정갈한 한식 코스요리를 먹으며 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 불편하지도 않은 대화가 오갔다. 나보다 긴장을 더 많이 하셨는지 때때로 그 사람 아버지의입술이 떨리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우리 000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부터 시작해서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 전형적인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나는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생각은 평소에 잘 정리가 되어 있던 터라 막힘없이 자신 있게답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1년 넘게 끊으셨던 술을 한잔 받으셨고 "앞으로 시작하게 될 장거리 연애의 1년이란 시간이 길어 보이지만 또 어찌 보면 짧은 기간이니 잘 기다리면 될 것 같다"는 덕담을 끝으로 자리를 마무리하였다.
이후에 그 사람을 통해서 전해 들은 가족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매우 좋았고 다들 나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 했다.
내친김에 나도 부모님께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얼굴 한번 보는 게 어떻겠냐고 여쭤보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아직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 좀 더 만나고 나중에 보자"라 말하며부담스러워하는 내색을 비추셨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고급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서서히 장기적인 관점의 얘기도 꺼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국에 다녀와서는 어디에서 살면 좋을지,지금까지 모은 돈은 얼마인지, 집을 산다면 지금부터 각자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따위의 이야기도 포함되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또래 치고는 적지 않은 자산을 모아놓은 상황이었는데 내가 가진 자산의 종류, 액수 등을 공개하고 그 사람은 어떤지 물어보니 돈은 부모님께서 관리하고 계셔서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부분이 조금 의아했지만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길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고대신 그는 일을 해온 기간과 연봉액을 토대로 대략적인 예상 저축액을 추산해서 내게 알려주었다.
모든 이야기들이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어느덧 우리는 내가 귀국한 후 2년 안에 자금을 모아 결혼식을 올리고 집을 구해 같이 살자는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리게 되었다.매일같이 만났지만 단 하루도 관계가 답보한 적 없이 하루하루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근데 있잖아, 다녀와서 어차피 결혼할 거라면다녀와서 하나 지금하나 똑같지 않아?"
"응?"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할 거라면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가는 건 어때? 그렇다면 기다리는 동안 내가 더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장거리 연애를 예상하고 시작한 관계였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연애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고 내심 그를 남겨두고 가는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음.. 그러게. 어차피 다녀와서 하나 가기 전에 하나 결과는 같은 데 가기 전에 해서 이 사람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속단한 것부터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하지만 이 당시에 나는 '나는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틀릴 리가 없다'는 자만으로 가득했고 결과적으로 지인이나 가족 그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마음속으로 결혼상대를 결정지은 상태였다.
그리고그렇다면나는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결혼을 축하받는 일이 더 중요하지 혼인신고 자체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서류상에 한 줄 올리는 것인데 그게 뭐 대수라고. 별거 아닌 일인 반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분명하니, 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
나는 미처 몰랐다. 그 서류상 한 줄의 무게를. 나는 이십여 년간을 그저 천진난만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춘기 소녀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출국 전 혼인신고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고 답하였고그렇다면 짧은 기간 안에 양가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보기로 하며그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