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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Jul 04. 2022

스물여덟, 나는 결혼을 후회한다

부모님 동의 없는 결혼, 그 어리석은 판단에 대한 이야기.

스물여덟.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작하지만 어쩌면 결혼하기엔 아깝게 느껴 수도 있는 풋하고도 아름다운 나이. 그런 꽃다운 나이에 나는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넘치다 못해 자만이 되었었다. 부모님께는 나중에 설명하고 설득드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다른 누구의 의견보다 내 판단과 의사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살이가 너무나도 간단하고도 쉬던 나는,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십여 년간 치열하게 쌓아 올린 자존감과 신념이 산산조각 났고 그렇게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깊은 우울 속에서 지난 반년을 살아냈다.




사람을 만난 것 작년 가을. 어학연수를 위해서 미국으로의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이별한 직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담담했고 그 이별로 인해서 내 삶에 큰 영향은 없는 듯 보였다.



 표면적으로 나는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들을 하며 알찬 삶을 살고 있었다. 새로운 운동, 재테크, 다양한 만남, 독서 등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어 생활을 하며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그중 하나인 운동을 하며 그 사람을 알게 되었고 첫인상은 그냥 '주말에 나와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다.



같은 체육관을 다니다 보니 그 이후에도 몇 번 마주칠 일이 생겼다. 가볍게 대화를 몇 번 주고받으면서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오랫동안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뜬금없이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무슨 노래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이별 발라드를 즐겨 듣는다는 소리를 하면서 그 얘기가 나왔던가. 옆에 있던 친구가 힘들어 하던 시절의 그사람을 흉내내며 짓궂게 놀려대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순수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미국 출국을 두 달 정도 앞둔 시점. 회사에도 퇴사 의사를 밝히고 체육관 사람들에게도 이제 곧 그만두게 된다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 사람이 있었고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꺼냈더니 집에 가기 전 내게 슬며시 다가와서 카톡 아이디를 달라고 했다. 기뻤다. 헤어지는 마당에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준 그 사람에게 고마웠다. 기쁜 마음으로 카톡 아이디를 주며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했다.



그러던 와중 그 사람이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생겼다. 마지막 출근일에 퇴사를 하며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주려고 선물을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크고 무거웠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나로서는 옮기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 사람이 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고 다른 동료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동료에게는 깜짝 선물로 하고 싶다는 이유를 대며 혹시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무사히 선물 배달을 완료했다. 답례로 저녁에 밥을 사기로 했기에 마지막 퇴근길에 마중 와 준 그의 차를 타고 이자카야로 향했다.


이자카야로 이동하는 차 안. 많은 사람과 작별인사를 하느라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던 나는 몹시 피곤했는데, 답례로 가는 식사자리임에도 내 상태가 메롱인 것과, 예상보다 퇴근시간 늦어져 많이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내색을 비추는 나를 보며 피곤하면 잠깐 눈 좀 붙여도 된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듣고 ', 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말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자카야에서도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내가 금방 출국할 것이라는 이유로 인해 나도 그도 사심 없이 편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고 그 덕에 더 즐겁고 더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다. 각자 전 연애에 대한 이야기, 이상형, 직장, 가치관 등에 대한 얘기들로 이야기가 무르익었고 람의  관하여 "그럴 수도 있.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그다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라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점이 나랑 정말 비슷하고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미국에 가는 것만 아니었어도'라는 마음이 들었다. 밤새 생각하며 잠을 못 이뤘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미 장거리 연애로 인한 이별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직전의 연애도 그런 이유로 끝이 났었다. 좋은데도 불구하고 선뜻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 억울해 눈물까지 났다.


그 사람 마음도 나와 같을지 궁금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다음 날 또 연락을 해봤다. 금방 점심 약속이 잡혔고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봤다. 역시 설레고 좋은 감정이 지속되던 중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지금 누나 좋아하면 어떡해?"라는 말을 들었다. ', 이 사람이라면 장거리 연애든 뭐든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택해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으로의 출국을 2달 남겨놓고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미처 몰랐다. 이때의 선택이 내 인생에 어떤 일들을 불러오게 될지.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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