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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Dec 15. 2019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어른들. 그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운 이유


어렸을 땐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술이나 담배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렸을 때 내가 되고 싶어 하던 그 어른이 되어있다. 보호자가 함께 가지 않아도 민증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의 서류업무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는 자유롭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곧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들은 "어른"이라는 단어를 다른 의미로서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숨길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라기도 하고 당장 힘들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미래를 생각하며 묵묵히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점을 꼽자면 "순간에 감정이나 욕구에 치우치기보다는 이성적인 판단 위에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사회적 의미에서의 어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와 같은 기준들은 나이가 찼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개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그다음 내면적으로도 어른이 되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주변에 "어른"사이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주저하고 "어차피 해도 안될 것이다" 혹은 "이제 와서 그걸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이상 이십 대 청춘이 아니기에,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기 때문에, 부양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결론은 대개 하나로 이어진다.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던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의 강력한 신봉자로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마인드가 변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기에 더 열심히 조사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중요한 건 역시 나이는 아니라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신체적으로 쇠퇴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처한 환경이었다.



"부양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이유였다. 나는 나 한 몸 벌어먹고살면 그만이지만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식을 부양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급여로 두 명 혹은 서너 명 이상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 당장의 월수입이 줄면 한 명이 아닌 가족 전체에 생계에 타격이 오기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회사에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언니가 돈 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던 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하지만 나는 속으로 '왜 구질구질하게 돈 얘기를 자꾸 꺼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언니는 솔직했던 것뿐이었다. 내가 혼자 벌어서 아이 둘을 키운다 생각했을 때, 금전적인 여유뿐만이 아니라 시간적 여유조차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독신이고 자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간단한 예로 주변에 회사에는 불만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회사와 대화를 시도하거나 이직을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 이는 일본이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 있기에 해당되는 사안이라 생각되는데 일본은 이직에 있어서 한국보다도 보수적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월급명세서에는 연령급이라는 항목이 있고 능력과는 관계없이 일단 나이가 많으면 같은 신입 이어도 급여가 높다. '엄청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일본은 나이가 많은 신입을 뽑지 않으려 한다.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려는 사람도 지금까지 일해왔던 회사에서의 근속연수 직급수당 등의 이유로 급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땅한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나이도 나이이면서 그것도 못 버티고 나왔냐는 식의 주변 시선은 덤이다. 버티고 참는 것이 미덕이 되어있는 일본 사회에서 용기 있게 내린 퇴사 결정은 철없는 판단 미스로 받아들여진다. 한 회사에 충성하기 좋은 사회적 환경이 형성되어있고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 덕에 일본 기업과 일본이라는 나라는 크게 성장하였지만 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한 없이 소극적이다.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내 주변의 어른들은 금전적인 나이 대한 사회적 인식 벽에 가로막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나이 따윈 숫자에 불과하다"는 내 믿음이 이 사회 안에서는 허황된 말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것에 고충을 겪고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에 대한 대비를 시작해 나가려고 한다. "돈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해?"라고 생각했던 철없는 마인드는 내가 당장 금전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이었다. "나이 따윈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또한 내가 나이로 인해 손해 보거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선택지는 열려있다고 할 지라도 새로운 도전을 했을 때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크다면 나 역시도 그분들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돈이나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을 안 이상 그 두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그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응원해가며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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