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춘을 지키는 파수꾼들에게

이제훈을 지키고 싶다, 영화 [파수꾼]

by 로사


어딘가 낯선 사람


9월은 묘한 계절이다. 방학도 끝났겠다, 잉여 생활을 청산하려는 순간 고민들이 밀물처럼 찾아온다. 나는 누구고 왜 여기 있는가 갑작스러운 자아 탐문부터 시작해 대인관계의 스트레스에서 정점을 찍는다.


나에겐 부모님의 딸이자 누군가의 친구로서의 몫이 뒤엉켜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나’이기 전에 많은 역할들을 부여받는다. 그렇기에 역할을 지키는 바쁜 파수꾼이 될 수밖에 없다.


메마른 나의 복학 생활에 단비 같은 친구 A 양과 캠퍼스를 거닐던 때였다. 우연히 마주친 7년 지기 친구에게 나는 방언 터지듯 짓궂은 장난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본 A 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 너 그런 모습 처음 봐. 우리한테는 네 얘기도 해 준 적 없으면서.”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요즘, 나조차 어딘가 낯설다.



청소년기 고민순위


우리들은 파수꾼이다


A 양의 말을 듣고 생각해봤다. 나는 상대방에 따라 내게 넘어올 수 있는 경계를 정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대인관계 계급 제도를 통해 친구에게 역할을 선물했다. A 양은 단지 나의 ‘대학 친구’에, 7년 지기 친구는 ‘베프’라는 상위 영역에 속해있었다.


나는 여고생이 되면서 영역을 나누는 파수꾼이 되어갔다. 단순하고 외향적이었던 나는 고등학교라는 새 집단이 신기했다. ‘머리’와 ‘가슴’, 친구를 대하는 방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변해갔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친구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가 당시 인생 고민이었다. 그 시절 선생님도, 부모님도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던 무언가가 있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기를 중요하고 위험한 시기라 정의했다. 스스로 무언가를 경험하려는 욕구가 생기는 때이다. 허세와 과시가 생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방어 욕구도 생긴다.


이 시기에 또래집단의 형성과 해체는 자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친구란 내 10대의 삶과 시간을 추억하는 또 다른 사람이다.


함께 익숙한 것들을 떠나 낯섦을 배운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파수꾼이 된다.




영화 [파수꾼] : 위태로운 소년들의 청춘


영화는 한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알고자 친구들을 찾아간다. 학교에서 ‘일진’이었던 기태(이제훈)에게는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과 학교 일진 무리들이 있었다. 친구의 죽음을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그들은 거꾸로 자신들의 방관적 태도와 잔인함을 발견한다.


영화 [파수꾼]의 소년들은 우리의 10대 시절을 보여준다. 권태기를 겪는 연인들처럼 예민하다. “화났냐?”, “아니”, “왜 그러는 건데?”, “몰라” 같은 대화들이 나온다.


사실 기태에게는 엄마의 부재, 또래집단으로부터 이탈의 두려움이 있었다. 좋아하는 여학생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셔틀’을 맡는 희준의 고민과 동윤에게는 여자 친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여기서 세 가지 오해가 생기지만 누구도 갈등의 원인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문제에 다가가는 순간 ‘나의 콤플렉스’가 들키기 때문이다. 열여덟, 친구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이 가장 중요했다.


소년들의 아픔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인 감정싸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집단’과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 기태는 어머니의 부재와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싫어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따라서 또래집단으로부터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일진이라는 ‘폭력집단’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얻으려 하고, 동윤과 희준이라는 ‘우정의 집단’을 통해 감정적인 공유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폭력집단’의 모습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동윤, 희준과의 관계를 깨닫는다.


그렇게 소년은 또다시 상실이라는 ‘결핍’을 얻는다.




파수꾼에게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

소년들은 폭력이라는 가장 아프지만 쉬운 방법으로 서로를 경계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과 상처들로 얼룩진 파수꾼들의 우정은 끝이 난다.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역시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다루고 있다. 학교에서 유명인사인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면서 주변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다. 친구들 사이 미묘하게 존재했던 계층과 청소년기 고민,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 마니아라면 [파수꾼]과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누구나 처음 맞이하는 10대는 서툴 수밖에 없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낯선 상황들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씩 겪어가다 보면 낯설고 딱딱했던 나는 유연해질 수 있다. 기태는 가장 폭력적이었지만 서투른 진심이 있었다. 그런 기태에게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대사를 전해주고 싶다.


그때 우리는 그 어떤 어른보다 심각했고 치열하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