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도좋아]
제주도 좋아?
풍경 좋고 살기도 편하고, 그냥 그렇지 뭐. 재작년, 상경 생활 당시의 단골 질문과 대답 세트이다. 제주산 23년 내 인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충분했나 보다. 별천지였던 ‘서울’ 라이프는 나를 ‘소울’ 풀하게 만들었다. 강남의 빽빽한 빌딩은 제주 절물휴양림의 울창한 삼나무 숲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밤거리의 네온사인은 어영 해안도로 위를 지키던 별빛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타향살이를 통해서야 나는 내 고향 제주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 좋아!
바다를 빗어준다는 것, 비치코밍(Beachcombing)
요즘의 제주는 쉼표의 요지이다. 바쁜 도시생활로 무너진 일상을 지키기 위해 떠난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전까지 고요했던 월정리 해수욕장은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지며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도 해안가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도내 해양쓰레기 발생량은 연간 2만여 톤에 이르지만 수거되고 있는 쓰레기 양은 전체 발생량의 45%인 9000 여톤 밖에 안 된다. 나머지 1만여 톤은 그대로 해안가에 쌓이고 있다.
최근, 자연정화 활동을 하는 착한 모임들도 많이 생기면서 아픈 제주 바다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해변에 있는 표류물들을 빗질 하듯이 모으는 그들을 ‘비치코머(beachcomber)’라 부른다. 외국에서 ‘비치코밍(beachcombing)’은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파도에 떠밀려온 생필품들을 모은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넓게는 해변 예술을 칭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해안가 정화 활동 경험이 있거나 조개껍질을 주워본 적 있는 당신이라면 비치코머로서 자격이 충분하다!
재주를 팝니다, 반짝반짝 지구 상회
지난 주말, 제2의 애향심으로 제주를 만들어가고 있는 비치코머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봉성리로 떠났다. 2012년 해녀학교에서 특별한 만남을 가진 비치코머들이 ‘재주도좋아’를 만들었다. 테왁에 하나둘씩 주워 담던 해안가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탄생하는데 필요했던 것은 ‘재주’가 아니라 ‘제주’였다. 제주 바다를 소비의 대상이 아닌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삶과 자연을 공유하고 있었다.
‘재주도좋아’ 는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반짝반짝 지구상회’라는 이름의 공방을 가지고 있다. 봉성리의 사용하지 않는 감귤선과장을 버려진 문짝, 애월 고택의 마루, 협재의 바다나무 등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오픈 스튜디오이다.
주재료가 되는 유리병들을 가마에 구워 가공한 반지, 컵 등과 같은 액세서리 및 실용품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폐목재 공예품과 귀여운 해녀 스티커는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실제로 상품들은 제주도 원도심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수익금의 일부 또한 기부되고 있다.
이렇게 ‘재주도좋아’의 독특한 매력은 정화 활동의 연장선인 후반 작업에서 나타난다. 물건을 만드는 일 외에도 재밌는 재주가 많다. 예술가들과 바다 쓰레기로 전시를 기획하는 ‘일주일 제주바다 레지던시’, 바다유리조각 한 컵을 가져와 참가하는 ‘글라스 투 글라스’ 만들기 수업,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바다 정화 작업 비치코밍 ‘바라던 바다’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제주도 좋아 !
‘제주’라는 타지에 온 그들이 ‘재주도좋아’를 만난 것은 분명 평범하지 않다. 내 지역 밖으로 나가본 일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사람에게 일상은 무감흥의 연속일 것이다.
버려지고 잊힌 것들에게는 더 그렇다. 그러나 뜻깊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함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적인 감각이 없어도 된다. 허리를 굽히고 찬찬히 살펴보아도, 멀리서 해안선을 산책하듯이 바라만 보아도 된다.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세면 충분하다. 사랑의 햇빛을 받은 그것은 새로운 꽃으로 필 것이다. 나에게, 비치코머에게 제주처럼.
재주도좋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로2길 9 반짝반짝 지구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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