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8n, 익숙한 흐름에 질문을 던지다
어느 날 오후, 디자인 미팅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알림 하나가 떴다.
“구글폼으로 홈페이지 제작 문의가 접수되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또 반복되는 업무가 시작되는구나.
상담 내용을 확인하고, 내용을 정리하고, 템플릿을 불러와 이메일을 보내는 일. UXUI 디자이너이자 1인 웹에이전시 대표로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건 내가 굳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감정에 집중하고 흐름을 설계하며,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잡아가는 일. 그런데 이 정성스러운 작업 뒤엔 늘 ‘문서화’라는 반복 업무가 따라온다.
단순하지만 중요하고, 중요하지만 반복되는 업무. 이 업무는 매일 조금씩 나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디자인보다 에너지를 어쩌면 더 많이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자동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n8n, 구글시트, G메일
n8n만 조금 낯설었지, 구글시트와 G메일은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익숙함이 곧 능숙함은 아니라는 걸, 막상 연결해보니 실감했다. 도구는 익숙했지만 구조는 낯설었고, 연결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처음 만들었던 흐름은 아주 단순했다. 구글폼으로 상담이 접수되면 시트에 저장하고, 특정 조건이 맞으면 해당 내용을 요약한 뒤, 템플릿에 담아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 이 단순한 자동화를 만들기 위해 나는 수없이 노드를 수정하고, 로그를 확인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그렇게 테스트를 반복하던 중 이상한 문장이 보였다.
“[object Object]님, 안녕하세요?”
분명히 이름을 넣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온 걸까?
해당 필드를 들여다보니, 단순한 문자열이 아니라 객체였다. 게다가 그 안의 키는 공백. 결국 나는 전체 객체를 그대로 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메일에는 [object Object]라는 문장이 들어가버렸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 $json["담당자"][""] }}
하지만 이 한 줄을 알기까지, 하루를 꼬박 썼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끝이 따라가지 못했고, 한 줄의 차이가 자동화를 가로막았다.
긴 시간을 씨름한 끝에, 드디어 플로우는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담이 접수되면 드디어 자동으로 요약된 이메일이 발송되었다.
작은 흐름 하나에 이렇게 기뻐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건 분명히 내가 만든 흐름이었다. 낯선 구조 앞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결국 스스로 풀어낸 해답이기에 더 짜릿했다. 디자이너로서 오랜만에 느끼는 종류의 성취감이었다.
n8n을 쓰며 가장 크게 배운 건 데이터의 '맥락'이다. 디자인이 사람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라면, 자동화는 데이터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 무엇을 어떤 구조로 받아서, 어떻게 전달할지.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사용자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익숙해질수록, 자동화는 단순한 '효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백'이 되었다.
그 여백 덕분에 나는 더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인에 몰입하고, 클라이언트와의 대화에 더 집중하고, 내 감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여유.
자동화는 사람의 감정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고객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며, 적절한 제안을 건네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자동화는 그 감정을 담을 ‘여백’을 만들어준다.
내가 더 오래, 더 온전히 사람을 마주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자동화는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자동화는 쉽지 않다. 복잡한 로직 앞에 머리를 싸매고, 한 줄의 변수를 고치기 위해 몇 시간을 쓰기도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게 누군가에겐, 더 좋은 경험이 되니까.
그리고 나 같은 디자이너에게는, 더 오래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작은 변화가 쌓여 흐름을 만들듯, 이 작은 실험들도 누군가의 하루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