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도착한 나만의 리듬

자동화는 감정을 대신할 수 없지만, 여백을 만들어준다

by 디자이너 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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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는 한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코드 한 줄 없이도 오랫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왔고, 그 세계는 어쩐지 ‘개발자들만의 언어’처럼 느껴졌으니까. 나와는 조금 먼 이야기. 하지만 어느 날, 반복되는 메일 회신과 문서 정리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자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행정적인 일에 쏟고 있었고, 그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창작의 시간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이 사람의 흐름을 설계하는 일이라면, 그 흐름도 기술로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호기심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자동화는 구글폼 응답에 대한 회신이었다. 의외로 복잡한 구조였지만, 하나하나 해석하고 연결하며 완성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도. 이번엔 나만을 위한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했다. 매일 아침 9시에 생성형 AI 관련 소식을 정리해서 내게 보내주는 자동화. 조금 더 정교하고, 조금 더 욕심이 담긴 흐름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것은 ‘내 감각을 위한 루틴’을 설계하는 실험이 되었다.


스크린샷 2025-07-15 오후 9.03.54.png 나의 두번째 n8n 자동화 노드


반복에서 루틴으로, 루틴에서 나만의 흐름으로


두 번째 자동화에는 욕심이 한 스푼 더 들어갔다. 다양한 뉴스 출처를 RSS로 수집하고, 각 기사를 GPT에게 요약시킨 후,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이미지를 생성하고, 마지막으로 이를 이메일에 예쁘게 담아 매일 아침 보내는 구조.


겉보기엔 단순한 자동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미로였다. GPT가 갑자기 출력을 멈추고, JSON 구조는 예상과 다르게 꼬이고, 이메일 템플릿은 의외의 구문 오류를 뱉어냈다.

그러다 마주한 문구 하나.


“You’ve used all your free credits.”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분명 GPT 유료 사용자였으니까. 그런데도 자동화는 멈췄다.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ChatGPT와 자동화에서 사용하는 OpenAI API는 완전히 별개라는 사실을.


테스트 중이던 무료 API 크레딧은 어느새 바닥났고, 유료 결제를 하지 않으면 흐름은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허둥지둥 다시 결제 페이지로 이동하고, 사용량을 모니터링하며 비용 구조를 이해해야 했다. 고작 몇 줄의 로직, 간단한 테스트였다고 생각했던 자동화는 어느덧 복잡한 시스템 설계가 되어 있었다.

자동화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사용자 경험’의 세계였다. 구조를 이해하고, 흐름을 설계하고, 예외 상황을 고려해야만 동작하는 아주 섬세한 시스템.



감각을 지키기 위한 기술


매일 같은 시간, 정돈된 형식으로 도착하는 뉴스레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작은 배려이자 루틴이며, 감각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디자인은 결국 감각의 예술이다. 그 감각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야 했다.

자동화는 그런 감각을 보존하기 위한 방패였다. 정리, 전달, 반복되는 행정 업무는 자동화에게 맡기고, 나는 더 깊이 사고하고 더 오래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만의 언어로 콘텐츠를 정제할 수 있었고, 스스로의 흐름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자동화는 사람의 감정을 대신하진 않지만, 그 감정을 더 잘 담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실험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아직 서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흐름


자동화는 여전히 쉽지 않다. 변수가 조금만 달라져도 흐름은 멈추고, 예상치 못한 에러는 나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는다. 때로는 전날 밤까지 완성했던 흐름이 다음날 아침에 멈춰 있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몇 시간씩 로그를 파고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이메일을 마주했을 때의 그 감정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작은 성공 하나가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게 만들고, 그것은 곧 내가 이 일을 더 오래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디자인도 자동화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본질은 같았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더 좋은 흐름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이어간다. 익숙한 도구와 낯선 도구를 엮어가며, 나만의 리듬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결국 그것은 ‘나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힌트가 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아침 9시에 도착하는 그 작은 뉴스레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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