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AI 덕분에 살아냈다

흐트러지는 아침의 기척

by 디자이너 야니

스크린샷 2025-07-16 오후 5.21.57.png Naver works 클로바노트


전날 밤은 어쩐지 이상했다. 잠은 멀고, 생각은 가까웠다. 복잡하게 스며드는 감정들이 자꾸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작은 불빛 하나, 옅은 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기울었고, 고요한 방 안의 정적은 오히려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소리도 없는 새벽에 나는 깨어 있는 나를 설득하느라 애를 썼다. 이제 그만 쉬어야 한다고, 내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정을 강요했다. 그러나 감정은 말처럼 가볍게 꺼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생각들이 내 안에서 겹겹이 쌓였고, 나는 그 무게를 안은 채로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나를 흔들어 깨운 건 알람 소리가 아니라, 아직 풀리지 않은 긴장감이었다. 회의는 정해진 시간에 시작되었고, 나는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었지만, 몸은 잠에서 덜 깨어났고, 마음은 여전히 새벽의 여운 속에 머물러 있었다. 커피의 쓴맛조차 오늘은 날카롭지 않았고, 어깨 위 무게는 여전했다.


줌 화면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고, 인사말과 근황이 오갔지만, 그 속에서 나는 자꾸만 멀어졌다. 사람들의 말 소리는 들렸지만 의미는 잡히지 않았고, 화면 속의 대화 소리보다 내 안의 피로가 더 또렷했다. 생각은 자꾸 엇나갔고, 화면 속 나의 얼굴은 감정을 숨기느라 더 굳어 있었다.


그럴 땐, 잠시라도 누가 나를 대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누군가 나 대신 귀 기울여주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문득 떠올린다. 그건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구조대처럼 느껴졌다.




조용한 동료의 기록


클로바노트. 이 조용한 도구는 오늘도 나 대신 회의를 듣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요한 말인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 모든 흐름을 감정 없이, 그러나 놓치지 않고 받아적는다. 무심한 듯 정직하게, 그리고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회의가 끝나고, 나는 조심스레 앱을 열었다. 마치 누군가 내 옆에 앉아 메모를 대신해준 것처럼, 한 줄 한 줄 또박또박 정리된 회의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문장은 내가 들었던 것보다 더 명확했고, 어떤 문장은 내가 놓친 맥락을 정확히 잡아냈다.


어느 부분이 핵심이고, 어떤 이야기는 뒤로 미뤄도 좋을지, 그 정리된 흐름 속에서 나는 다시 하루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어수선했던 리듬이 기술의 손끝에서 천천히 정돈되고 있었다. 무너질 것 같던 구조가 다시 똑바로 서는 순간이었다.


그 회의록을 읽으며 나는 회의 그 자체보다 더 깊은 몰입을 느꼈다. 그건 단순한 정보의 정리가 아니라, 감각의 회복이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 어쩌면 그게 오늘 클로바노트가 내게 건넨 진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위한 기술


한때 자동화는 내겐 차가운 언어였다. 반복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구조. 하지만 그 말 속에 감정이 머무를 자리는 없어 보였다. 기술이라는 말이 내게 건네는 건 늘 "빨라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디자이너로서의 나와는 조금 어긋나는 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적어도 나에겐, 자동화가 감정을 대신해주기보다는, 감정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구조로 다가온다.


집중할 수 없는 날, 흐름이 끊긴 순간, 그 자리에 기술이 대신 앉아 있다면, 나는 안심하고 나의 흐름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기계가 나를 대신한다고 느껴지기보다는, 기계가 내 옆에서 묵묵히 함께 일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더 크다.


클로바노트는 오늘 그 역할을 아주 조용히 해냈다. 내가 흐려지는 순간에도 흐름을 잃지 않았고, 회의의 강약과 의미를 나보다 먼저 파악해주었다. 심지어 그것을 더 논리적인 구조로 내게 되돌려주었다.


자동화가 누군가에겐 단순한 기능일 수 있겠지만, 오늘의 나에겐 그것이 하나의 감각적 배려였다. 기술이 건네는 가장 섬세한 종류의 배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 내 상태를 묻지 않고도 함께 있어주는 존재.



무너지지 않아도 되는 하루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집중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날이 같을 순 없다는 걸.


어떤 날은 세상이 잘 들리고, 어떤 날은 내 속 이야기도 어지럽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하루는, 그런 감정의 진폭을 무시할 수 없다. 그 파동을 억지로 누르기보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지속가능한 삶이 된다.

오늘의 나는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의 흐름은 이어졌고, 나는 그 사이에서 나만의 호흡을 되찾았다. 그건 단지 일의 흐름을 복구했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중심을 다시 찾았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클로바노트가 남긴 기록을 보며 천천히 따라갔고, 회의의 결론을 되짚으며 나만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내가 단순히 회의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회의 안에서 무언가를 ‘다시 연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주 작은 회복이었지만, 내겐 충분히 의미 있는 회복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회복은 오후의 리듬을 바꾸었다. 일정 정리에 더 신중해졌고, 커피 한 잔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감각


AI는 이제 내 업무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일하는 ‘존재’에 가깝다. 존재라는 말엔 감정이 담긴다. 기술을 감정으로 대한다는 건, 그것이 단순한 기능 이상의 신뢰를 쌓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던 시절에는 몰랐던 감각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의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 그건 결국 나의 감정과 리듬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리듬을 지켜주는 조력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일 무너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는 걸.


기술은 더 이상 효율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나의 여백을 지켜주는, 조용한 동료가 될 수 있다. 일에 몰입할 수 없는 날에도, 감각이 느슨해지는 날에도, 그 틈을 대신 메워주는 존재. 나는 이제 그런 기술과 함께 일하고 있다. 오늘처럼 집중하지 못한 날에도, 기록과 정리를 통해 다시 중심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그건 너무나 고마운 감정이다. 그리고 그 고마움은 단순히 순간을 넘기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된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마워, AI. 오늘도 나 대신 집중해줘서."


그 고마움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내가 오늘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살아냈다는, 그 감각의 증거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동료와 함께, 내일도 내 리듬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작은 확신이지만, 나에겐 충분히 단단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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