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로봇 앞에서 떠오른 아주 오래된 감정
며칠 전, 친구와 오랜만에 식당에 갔다. 테이블에 앉아 테이블 오더로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마쳤다. 잠시 후, 음식이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다가온 건 익숙한 직원이 아닌 조용한 서빙로봇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 다가와, 조용히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기계.
예전엔 달랐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웃는 얼굴이 건네지곤 했다. 그 짧은 말 한마디, 그 눈빛 하나가 식사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무표정한 로봇이 있다. 우리는 접시를 내려놓고, 어색한 침묵 속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분명 편리했다. 빠르고 정확했다. 그런데 그 밥상 위엔 마음이 없었다. 문득,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사람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AI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동화 시스템을 보면 흥미가 생기고, 기술이 바꾸는 일과 삶의 구조를 상상하는 걸 즐긴다. 그런데도 그날만큼은 달랐다. 밥을 먹으며 마음 한쪽이 시려왔다.
식당은 원래 사람 냄새로 가득한 곳이었다. 바쁜 점심시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문을 받는 직원들, 부드럽게 테이블을 닦는 손길, “물 좀 더 주세요”라는 익숙한 외침.
그 소란스러움이 곧 따뜻함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말이 오가고, 눈이 마주치고, 마음이 섞였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말 대신 버튼을 누르고, 사람 대신 화면을 바라본다. 로봇은 정확하지만 무표정하고, 주문 시스템은 편리하지만 대화가 없다.
무엇이 빠졌는지도 모르게 허전한 식사. 말이 사라진 공간. 효율은 높아졌지만, 마음은 점점 옅어진다.
기술은 분명 우리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까.
AI는 정답을 잘 찾는다. 실수도 적고, 계산도 빠르다. 로봇은 짜증도, 피곤함도 없이 묵묵히 일한다. 때로는 우리보다 낫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자꾸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건 단순히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있는 자리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리듬이 흐른다. 눈빛, 말투, 심지어 작은 실수까지도 따뜻함으로 남는다. “물은 셀프예요”라고 말해주던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기계는 그 연결을 대신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감정이라 부르고, 나는 그 감정이 자꾸 그리워진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너무 빠른 건 아닐까. 너무 정확한 건 아닐까. 사람이 필요 없는 구조 속에서, 사람은 어디쯤 있어야 할까.
예전에는 속도가 곧 실력이라 믿었다. 효율이 전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일하는 리듬, 살아가는 속도, 느끼는 감정까지—모든 것이 점점 도구에 맞춰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AI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계는 조급함이 없다. 대신 우리는 더 빠르게 움직이며,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렇게 사람의 자리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사라지고 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려던 찰나, 계산대 너머의 직원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익숙한 말이었다. 짧고 흔한 인사였지만 그 안엔 다정한 결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감사합니다"를 되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계산 후의 인사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순간,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몇 해 전, 작은 식당에서 비 오는 날 밥을 먹고 나오던 날. 직원이 우산을 펴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한마디가 손끝에까지 감정을 남겼다. 그날의 온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겹쳐진다.
기계는 인사하지 않는다. 계산이 끝나면 조용히 영수증이 출력될 뿐이다. 정해진 문구가 적힌 종이 한 장이, 아무 감정 없이 뚝 하고 떨어진다. 효율은 있지만, 체온은 없다.
사람의 인사는 그날의 기분, 말의 속도, 눈빛의 떨림을 담는다. 우리는 그런 결 하나로 서로를 기억한다.
나는 아직, 그런 풍경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감정.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따뜻한 흔적. 그것이 우리가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기술을 멀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변화에 설렌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자동화할 것이다. 더 많은 공간에서 로봇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사람의 자리는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실수하고, 느리고, 때로는 엉뚱한 존재. 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존재.
밥을 먹고, 눈을 마주치고,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 일. 나는 그런 작고 평범한 장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의 자리가 조용히 사라져가는 시대에, 나는 오히려 더 천천히, 더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