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너머, 감각이라는 이름의 질문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걸 곧잘 '꾸미는 일'이라 생각했다. 예쁘고 보기 좋고, 누군가의 눈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색을 고르고, 폰트를 정하고, 균형을 맞추는 그 모든 과정이 마치 조용한 연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조용한 연주는 점점 더 복잡한 감정의 악보로 변해갔다. 아름다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 내가 만든 것이 정말 누군가에게 닿고 있는지, 그것이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맥락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질문이 생겼고, 그 질문은 나를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우리는 점차 ‘예쁜 것’에서 ‘필요한 것’으로, 다시 ‘의미 있는 것’으로 옮겨왔다. 디자인은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구조이고, 흐름이며, 감정의 통로가 되었다. 화면 안의 요소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할까?', '이 구조는 사용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을까?'
디자이너는 더 이상 장인의 손보다, 독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다정한 질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균열을 감각하며, 정답 대신 여운을 남기는 사람. 그렇게 디자인은 점점 더 마음 가까이 다가왔다.
요즘은 종종, 내가 아닌 도구가 먼저 움직인다는 생각을 한다. 브리프, 작업의 방향성과 맥락이 담긴 짧은 문장을 하나 던지면, 알고리즘은 단 몇 초 만에 와이어프레임을 구성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써낸다. UX 라이팅도, 인터랙션도, 더 이상 손으로 조심스레 그릴 필요가 없다. 빠르고 정확하게, 어쩌면 너무나 매끄럽게 만들어지는 결과물들.
그럴 때면, 마음 한켠이 텅 빈 듯하다. 내가 했던 고민들, 쏟아부었던 시간들, 그 모든 과정이 도구 안에서 생략되는 듯한 기분. 하지만 그 텅 빈 감정 속에는 또 다른 가능성의 여백이 숨어 있었다.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기술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아름답게 꾸미는 일도,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자동화되는 시대. 그럼 디자이너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감정'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본다.
기술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왜 만드는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AI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감정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머무르고, 흐르고, 전해지는 것이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바로 그 흐름을 느끼고, 구조로 엮어내는 사람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불편을 감각하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긴장을 마주하며, 기능 너머의 질문을 짓는 사람.
디자이너는 이제 감정의 통역자다. 데이터 사이에서 숨겨진 이야기의 리듬을 읽고, 기술 사이에서 따뜻한 틈을 만드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도형을 배치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배치해야 한다.
디자인은 더 이상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대화이고, 초대이고, 연결을 위한 구조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완성도를 높이기보다, 해석의 틈을 열어둘 것이다. 모든 것을 정의하기보다, 무언가가 흘러들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사람. 나는 점점 더 그런 구조를 선호하게 되었다.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비워진 구조. 그 안에 사람의 이야기가 머물 수 있으니까.
디자인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이건 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곧 공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들고, 지우고, 다시 묻고, 또 만든다. 때로는 흐릿하고, 때로는 또렷하다. 하지만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내가 잃지 않으려는 것은 단 하나, 감각이다. 감각은 느린 것이다. 데이터를 쫓기보다 분위기를 살피고, 결과를 향해 달리기보다 흐름을 따라 걷는 것. 그렇게 천천히 쌓인 감각은, 기술이 닿지 못하는 결을 만든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도구를 다루는 사람이라기보다, 감정을 어루만지는 사람일 것이다. 질문을 품고, 리듬을 읽고, 보이지 않는 연결을 짓는 사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디자인은 정말로 사람의 마음에 닿고 있을까?'
그 물음 하나로부터, 오늘도 모든 디자인이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