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쌓여 도구가 되었다

감각을 정리하는 네이밍 자동화

by 디자이너 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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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친구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건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순간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 멈춰버렸다. 마우스 커서는 버튼 위를 맴돌았고, 머릿속에는 이름 없는 구조들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버튼'이란 이름으론 어딘가 부족했고, '기능'이라는 단어는 감정을 담기엔 너무 딱딱했다.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그건, 감각을 나의 언어로 정리해나가는 일이었다. 디자인을 한다는 건, 때로는 말을 건네지 못하는 화면에게 말의 형식을 부여하는 일. 그러니 이 질문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아주 따뜻한 출발이었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들


학생들이 헷갈려한 건 구조 자체가 아니라, 그 구조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였다. 누군가는 상단 영역을 '히어로 섹션', 또 다른 이는 '키비주얼', 혹은 '비주얼 배너'라고 부른다. 똑같은 구조인데도 부르는 말이 다르다. 실무에서는 사실 이렇게까지 정형화된 규칙을 따르진 않는다. 서로 대화하며, 맥락 속에서 유연하게 정리해나간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요소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그걸 통해 서로가 이해하고 연결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름 그 자체보다도, 소통이 되는가. 맥락이 이어지는가.


하지만 캠프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감각을 언어로 정리하는 훈련이 필요했고, 그래서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을 지나야만 스스로의 기준과 리듬이 생겨난다는 것도.


사실 나도 아직 어렵다. 영문 네이밍이 언제나 익숙한 건 아니다. 오랜 경력이 있음에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다시 잠깐 멈춰 서게 된다.


나는 네이밍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네이밍이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름 하나 때문에 리듬을 잃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주 작은 시도를 해보는 중이다. 네이밍을 반자동화해줄 수 있는 어떤 구조, 어떤 흐름, 어떤 언어의 틀을 만들어볼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직 완성된 건 없다. 어쩌면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도가 혼란을 덜어주고, 감각을 흐르도록 돕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기술이 사람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보호해줄 수 있다면. 나는 그 기술을 따뜻하게 사용하고 싶다.



자동화라는 이름의 감정 정리장치


우리가 자동화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차가운 반복일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믿는다. 나는 모든 것을 자동화하려는 사람은 아니다. 손으로 정리하는 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무의미한 반복이나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감각이 마모되는 건 막고 싶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 네이밍 도구는 정답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잠시 숨 고를 수 있게 해주는 틀이자, 아주 작은 배려다. 학생들이 더 본질적인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스크린샷 2025-07-25 오후 4.16.31.png 섹션,모듈,아이템에 한글로 입력하면 네이밍이 영문 변환되서 제안되도록 자동화 시트를 만들어 보았다. 참고용


section_navigation_bar
module_popular_jobs
item_company_logo


이런 이름들은 기계가 만들어낸 코드가 아니다. 내가 화면을 바라보며 느낀 구조와 흐름, 그리고 마음을 담은 언어였다. 정리되지 않은 감각은 쉽게 무너진다. 감정은 그 흐름 속에서 길을 잃는다. 이 네이밍 도구는 그래서, 나에게는 '감정 정리장치'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구조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다리였으면 좋겠다.



질문에서 피어난 시도


친구들은 계속 물었다.


"이건 뭐라고 불러야 어색하지 않을까요?"


나는 내가 만든 구글 시트 링크를 조심스럽게 공유했다. 익숙하지 않은 문서 작업이라 어쩌면 투박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막막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만든 시트였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전해졌으면 했다. 네이밍 규칙을 정리한 이 시트는 어쩌면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려는 과정이었지만, 결국은 나 자신의 감각을 정리하고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름은 결국 관계의 언어다. 요소와 기능 사이, 구조와 맥락 사이, 나와 나의 작업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 공식적인 네이밍 규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다리는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글로 써도 되고, 틀려도 된다. 중요한 건, 그걸 통해 구조를 바라보는 나만의 감각을 조금씩 쌓아가는 일이라는 걸.




나는 오늘도 구조를 짓는다


디자인은 모양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구조를 짓는 일이다. 그리고 구조를 짓는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이름 짓는다. 정확한 네이밍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른다. 이게 어떤 역할인지, 어떤 흐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본다.


이 도구는 완성형이 아니다. 계속해서 수정되고, 덧붙여지고, 때로는 지워지는 살아 있는 문서다. 지금도 나는 이 작업을 완성했다기보다는,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문서를 열고, 질문을 쌓고, 감정을 정리하고, 구조를 만든다.


기술은 감정을 대신할 수 없지만, 감정을 지켜주는 기술이 있다면, 나는 그걸 따뜻하게 사용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 되어간다.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구조와 언어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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