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는 좋지만, 마음을 그리는 펜은 잊지 않기로 했다

손으로 그리던 시절의 감각을 다시 꺼내며

by 디자이너 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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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노트는 몇 년 전, 내가 한창 프로젝트에 몰입해 있던 시절의 흔적이다. 빛바랜 종이 위, 얇은 펜촉으로 눌러쓴 글자와 수많은 선들. 매 페이지마다 손으로 그린 와이어프레임, 정갈하게 정렬된 텍스트, 가끔은 조금 삐뚤거나 여백이 과한 선들까지도 그때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단순한 도식이 아니라, 나의 집중과 감정이 흐르던 흔적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줄을 긋고, 선을 맞추고, 다시 지우고 그리던 날들. 가끔은 커피 얼룩이 스며들기도 했고, 메모지 한 장이 접힌 채 그대로 붙어 있기도 했다. 그런 조각 같은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직도 그 노트를 펼치면 당시의 공기, 머릿속의 복잡한 레이아웃, 그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몰입의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건 무언가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감각들을 하나씩 불러오는 과정이었다. 펜 끝에서 전해지는 마찰감, 생각보다 살짝 기울어진 텍스트, 크기가 들쑥날쑥한 여백조차도 나의 생각을 대신 말해주었다.


가끔은 그런 아날로그한 흔적들이 지금의 툴보다도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손으로 눌러쓴 한 줄 메모, 귀퉁이에 조용히 그려진 감정의 선.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땐 정말 이 일을 사랑했지.”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는지를 마주할 때면 조금 울컥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결과만을 기록하지만, 종이는 과정을 기억한다. 그 느린 기록들이 지금도 내 작업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너무 편해진 도구들 속에서


요즘은 리룸AI 같은 도구를 켜고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와이어프레임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똑똑하고 정확하고, 무엇보다 빠르다. 클릭 몇 번이면 레이아웃이 만들어지고, 반복적인 구조는 자동으로 정리된다. 사용자 흐름도, 콘텐츠의 우선순위도, 어느 정도는 알고리즘이 알아서 제안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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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편리하다.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실수도 거의 없다. 자동화된 추천은 우리를 효율적인 선택으로 이끌고, 실무에서는 그 ‘빠름’이 능력이 되기도 한다. 손으로 그릴 때의 불완전함은 이제 디지털 속에서 다듬어지고, 매끈한 화면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완성되는 화면 앞에서 가끔은 조금 허전하다. 어떤 감정도 머무르지 않는 듯한 속도. 누가 그렸는지 모를 구조. ‘정확한 답’은 있지만, ‘나만의 대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요즘,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생각을 대신하고 있는 도구에만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구는 점점 더 똑똑해지는데, 나는 그 안에서 점점 더 작아지는 기분. 정답이 빠르게 도착할수록, 내가 놓치는 여백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빠른 결과들 사이에서 잊고 있던 건, 느린 시작, 불완전한 선, 마음이 머무는 여백이었다.



다시 펜을 들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종이와 펜을 꺼냈다. 디지털 화면을 닫고, 책상 위에 노트를 펼치고, 조심스레 선 하나를 그었다. 아무런 규칙도, 템플릿도 없이. 익숙했던 자동 정렬이나 미리 짜여진 컴포넌트 없이,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화면'을 손으로 그려보았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피그마 단축키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손끝은 잠시 머뭇거렸고, 선은 예상보다 비뚤게 그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세 개의 프레임을 손으로 그려나가자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면의 구조가 아니라 흐름이 보였고, 기능이 아니라 감정이 느껴졌다.


“이 부분에서 사용자가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
“여긴 조용한 공백처럼 여유를 주고 싶어.”


펜으로 따라가는 선 위에는 기능보다 먼저 마음이 있었고, 완성보다 먼저 방향이 있었다. 종이 위의 리듬은 조용했고, 그래서 더 또렷했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펜촉을 따라 흘러나왔다. 정제되지 않은 그 흐름이,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내 감각이었다.


그 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호흡하고, 자주 멈추며, 종이를 만지작거리는 내 손의 움직임. 모든 게 그때와 같았다. 자정이 넘은 작업실, 작은 탁상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이어지던 그 리듬 그대로.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도, 감각은 여전히 사람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고 있던 리듬


자동화는 참 편하다. 그리고 분명 유용하다. 우리는 그 효율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만들고, 더 적은 에너지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리듬은 그 속도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었다.


예전엔 종이 위에 흐르던 나만의 사고 흐름, 의식하지 않아도 손끝으로 이어지던 결정들이 점점 템플릿과 툴의 제안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설계한 구조 안에서 나의 감각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내가 펜을 다시 든 건, 그 리듬을 다시 찾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몇 장의 손그림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일이 아닌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나부터 납득하고 싶은 감각. 빠르지 않아도, 정답이 없어도 괜찮은 질문들. 그게 너무 그리웠다.


기억을 더듬어 선을 그리고, 한 번 더 선을 겹치는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감각을 다시 만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 바로 나만의 리듬, 나만의 판단, 나만의 무게감.


그건 단순히 도구를 멈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안의 고요를 다시 꺼내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고요 속에서, 오래전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스무 살 무렵, UXUI라는 말도 아직 없던 그 시절. 우리는 그냥 '웹디자인'이라 불렀고, 디자인은 늘 포토샵 창 안에 있었다. 모든 걸 손으로 맞추고, 감으로 배열하고, 경험이라는 말 대신 감정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웠던 시절. 그때처럼, 순전히 감각만으로도 충분했던 때처럼.




다시, 감각으로 돌아가는 일


그날 이후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아주 잠깐이더라도 종이를 펼친다. 모든 걸 손으로 그리진 않더라도, 시작은 항상 느린 리듬에서 한다. 자동화는 언제든 다시 켤 수 있지만, 감각은 멈춰두면 쉽게 녹슬기 때문이다.


툴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종이는 조용하고 솔직하다. 그 위에 남겨지는 선들은 나의 집중과 의도가 고스란히 담긴다. 리룸AI도, 피그마도, 오토레이아웃도 모두 좋다. 다만 때로는 그 모든 걸 잠시 꺼두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만히 되짚어보고 싶다.


나는 여전히 디지털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날로그는 나의 호흡을 되찾아주는 공간이다. 정답 대신 망설임이 허용되고, 완벽 대신 감각이 살아 있는 곳. 디지털이 일의 속도를 말해준다면, 아날로그는 내가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를 기억하게 해준다.


잊고 지냈던 냄새가 있다. 갓 찢은 종이의 결, 오래된 잉크 냄새, 그리고 종이를 넘길 때 손끝에서 전해지는 얇은 바스락거림. 그건 공기 중에 사라졌던 나의 감각을 불러오는 마법 같은 촉감이다.


오늘도 나는 자동화를 off하고, 종이 한 장을 펼친다. 펜을 잡고, 첫 선을 긋는다. 그 선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것은 다시 감각으로 돌아가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전의 내가 조용히 옆에 앉는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함께 종이를 넘기고, 선을 그으며. 그렇게, 아주 아날로그한 리듬으로 나는 오늘도 다시 시작한다. 다시 느리게, 다시 나답게. 그곳에서 나는 다시 디자이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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